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학생들은 컴퓨터 게임을 많이 합니다. 제가 어릴 때는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에 밖에서 하는 놀이가 많았습니다. ‘술래잡기, 다방구, 구술치기, 자치기, 비석치기, 말뚝박기, 우리 집에 왜 왔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정말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놀 거리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게임과 놀이는 어린 시절 저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고, 친구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이치를 알게 해 주었고, 건강하게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 안에 있는 ‘가상의 세계’에서 놀이를 하고, 친구를 만나고, 웃고, 울고, 즐거워합니다.
어떤 컴퓨터 전문가가 가상의 세상에서 가장 성공하고, 번성하는 방법을 찾아내었다고 합니다. 폭력과 싸움을 전문으로 하는 방법, 시기와 모함을 전문으로 하는 방법, 남의 것은 빼앗고 괴롭히는 방법 그리고 평화와 화합, 용서를 전문으로 하는 방법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수백 번 게임을 했는데 늘 결과는 같았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폭력과 싸움을 전문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성공하고 이기는 것 같았지만 최후의 승리는 언제나 ‘평화, 화합, 용서’를 하는 프로그램이 차지하였습니다. 어떤 상황을 만들어도 결과는 같았다고 합니다.
어제, ‘바이러스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연구한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바이러스는 스스로는 생명체를 유지할 수 없는 생물과 미생물의 경계선에 있는 개체라고 합니다. 생명체에 들어가 자리를 차지하면 살아갈 수 있지만, 숙주인 생명체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합니다. 인체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다행히도 많이 전파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는 바이러스가 ‘너죽고 나죽자’라는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이러스를 전파할 숙주인 생명체가 바이러스에 의해서 죽어버리기 때문에 널리 퍼질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숙주인 생명체에 살면서 피해를 거의 주지 않는 바이러스는 널리 퍼지게 된다고 합니다. 오히려 숙주인 생명체에 도움을 주는 바이러스는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자신의 영역을 넓혀 갈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을 ‘공생’이라고 말을 합니다.
어릴 때, ‘홍익인간’이란 말을 들었습니다. 대학 중에는 ‘홍익 대학교’도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민족이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지혜였다고 생각합니다.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것’은 바로 공생이며, 평화와 화합 그리고 용서의 자세입니다. 그러기에 넓은 영토가 없어도, 풍부한 자원이 없어도 단일한 민족, 고유한 언어, 독창적인 문화를 간직하며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세상을 이기는 방법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궁극적인 인생의 게임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리석어 보일지라고, 그 길이 나와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이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나를 미워했던 사람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결국 그 방법만이 자아를 잃어버린 우리들에게 하느님의 모상을 다시 회복할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독서도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사랑하고 용서하고 베푸는 것은 남을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이 세상을 기쁘게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해야 하는 행동입니다. 나와 내 가족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고, 천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