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교회 내의 의사소통’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제의 입장에서 본 의사소통’이라는 주제로 15분간 발표를 하기로 했습니다. 의사소통에서 중요한 것은 ‘눈높이’라고 생각합니다. 물은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의사소통의 핵심은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하느님이시면서 몸소 사람이 되신 것은 바로 우리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대통령의 국민 지지도가 상당히 높아졌다고 합니다. 이유는 ‘중도실용, 친 서민’ 정책을 발표하고, 그것을 가시적으로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결국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정부가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것입니다. 교회 내의 의사소통도 신자들의 마음과 신자들의 눈높이에 함께 할 때 원활하게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어제는 ‘본당 사목 평의회’라는 주제로 신학교에서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본당 사목 평의회는 본당 신부에게 ‘건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건의 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저도 서서울 지역 교육 담당 사제이기 때문에 지역 평의회에 참석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도 지구장 신부님들은 주교님께 건의할 수 있는 결정은 내리지만, 최종 결정은 주교님께서 하시게 됩니다. 그러나 주교님께서도 지구장 신부들의 의견을 잘 청취하셔야 하고, 지구장 신부들의 건의가 합당하면 수용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본당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목 평의회의 임원들이 건의하는 의견들을 본당 신부는 잘 청취해야하고, 사목 평의회의 의견이 잘 반영되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의사소통’이 잘 되기 위한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남의 허물과 잘못을 탓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생각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명확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먼저 자신의 허물을 솔직하게 이야기 합니다. 믿음이 없었고, 하느님을 몰랐기 때문에 ‘교회’를 박해했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이제 하느님을 알고, 믿음이 생겨서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고 말을 합니다.
남을 탓하기 전에, 먼저 나의 허물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