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2주간 월요일(적성 본당 조원행 신부님의 강론)

2009. 6. 22. 오전 8:48:08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어제 재매결연을 맺었던 적성 본당의 조원행 야고보 신부님의 강론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찬미예수! 저는 소개 받은 적성 본당의 조원행 야고보 신부입니다. 제가 있는 적성에서 여기 시흥5동까지 오는데 1시간 반 남짓 걸리는 거리지만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높고 낮은 산들 사이로 구불구불 펼쳐진 논밭, 그 위로 한가로이 희디흰 자태를 뽐내며 물고기나 개구리를 사냥하는 백로들, 그리고 북녘 소식을 가슴에 부여안고 고고히 흐르는 임진강이, 한강과 맞닿는 곳으로 내려오면서 다시 이북 땅을 우편에 이고 강화도 먼 바다로 분단의 한을 물속 깊이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일산 신도시를 거쳐 서울로 들어오면 잘 정리된 거리와 건축물, 수많은 차들과 인파가 우선 혼을 빼앗습니다. 물론 아름다운 한강이 황량할 수 있는 도시 모습을 감싸주고는 있지만, 그래도 많은 인공적인 냄새가 여전히 긴장을 풀지 못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 드리는 제가 농촌생활을 얼마나 오래한지 아십니까? 사실은 농촌생활 이제 겨우 1년도 채 안된 제가 건방지게도 마치 일생을 산 사람처럼 타박거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재의 마음 속 고백은 이제까지 도시 생활을 어떻게 해왔나 생각이 잘 안 난다는 것과 그만큼 벌써 도시생활이 낯설어졌다는 사실이고 체험입니다. 더구나 백 명 남짓의 신자들과 주일미사를 드리다 이곳에서 이렇게 많은 분들과 미사를 봉헌하려니 옛날 군종신부 때 평일미사를 혼자 드리다 어느 때 본당에 나가 많은 분들 앞에서 드리는 미사가 낯설고 떨리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기왕 얘기가 나왔으니 먼저 저희 본당에 대한 안내를 잠깐 해드리는 것이 나을 듯 합니다. 우선 저희 본당은 무지 넓습니다. 관할범위가 파주시 적성면, 파평면과 연천군 백학면, 장남면 이렇게 4개면인데 합친 넓이는 서울 전체의 삼분의 일 크기이고, 우리 의정부 교구에서도 십분의 일은 충분히 됩니다. 또 본당 대지도 삼천 평이나 되어 올해부터는 천오백 평에 야생화를 심어 지역 주민에게 개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 본당은 무지 적습니다. 우선 신자수가 5백여 명에 신자비율은 지역주민 대비 4퍼센트에 불과합니다. 적은 인구가 넓은 곳에 퍼져 있어 선교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주일미사 참여자도 겨울 농한기에는 거의 200명 정도 나옵니다만 봄부터 농번기가 되면 백 이삼십 명으로 줄어들어, 60만원가까이 가는 헌금이 삼십만 원대로 쉽게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과 돈 모두가 적습니다. 그래도 높은 하늘, 청량한 공기, 깊은 산, 기름진 논밭과 눈이 시리게 굽이치는 임진강은 우리의 행복이고 삶 자체입니다. 잘난 척만 너무 했나요? 그래도 이것이 저의 1년간의 놀라운 체험이었고, 제 삶의 잃었던 뿌리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일부분이긴 해도 조금씩 정화되어가는 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사도들은 놀라운 체험을 하면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평상시 놀라운 기적으로 제자들의 마음을 뿌듯하게 하고 그만큼 신뢰할 수 있었던 예수님이 옆에 계셨지만 자신들의 돌발적인 위험 앞에서는 정신을 못 차리며 예수님께 투정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즉시 위험을 없애 주시고 그들의 작은 믿음을 혼내시고 계십니다. 마치 겨우 1년 농촌 체험을 한 제가 일생 살아온 사람처럼 건방을 떨다가 진짜 자연 앞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모양입니다. 그래도 대자연을 다스리시던 그 체험은 제자들에게 사목생활의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우리 신앙과 삶은 하느님과 만나는 삶입니다. 그러나 흔히는 놀라운 기적이나 체험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한 부분에서, 아주 작은 만남에서, 일상의 자연변화에서, 조금씩 하느님 사랑의 편린들을 느끼고 체험하고, 간직하면서 하느님이라는 커다란 모자이크를 완성해 가는 삶입니다. 작은 체험이고 느낌이지만 그 안에 간직된 하느님의 손길과 사랑은 우리 삶의 방향을 변화시켜 주고 정화시켜주는 것입니다.

어느 날 아침편지라는 사이트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서울 용산의 삼각지 뒷골목엔 ‘옛집’이라는 간판이 걸린 허름한 국수집이 있다. 달랑 탁자는 4개뿐인.. 주인 할머니는 25년을 한결같이 연탄불로 뭉근하게 멸치국물을 우려내 그 멸치국물에 국수를 말아낸다. 10년이 넘게 국수 값은 2000원에 묶어놓고도 면은 얼마든지 달라는 대로 더 준다. 몇 년 전에 이 집이 SBS TV.에 소개된 뒤 나이 지긋한 남자가 담당 PD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전화를 걸어온 남자는 15년 전 사기를 당해 재산을 들어먹고 아내까지 떠나버렸다. 용산 역 앞을 배회하던 그는 식당들을 찾아다니며 한 끼를 구걸했다. 그러나 음식점마다 쫓겨나기를 거듭하다보디 독이 올랐다. 휘발유를 뿌려 불 질러 버리겠다고 마음먹었다. 할머니네 국수집에까지 가게 된 사내는 무조건 자리부터 차지하고 앉았다. 나온 국수를 허겁지겁 먹자 할머니가 그릇을 빼앗아갔다. 그러더니 국수와 국물을 한가득 다시 내줬다. 두 그릇치를 퍼 넣은 그는 눈치를 보다 냅다 도망쳤다. 그러자 할머니가 뒤쫓아 나오면서 뒤에 대고 소리쳤다. “그냥 가, 뛰지 말구, 다쳐!” 그 한마디에 쫓기던 사내는 세상에 품은 증오를 모두 내 버렸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는 체험은 내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습니다. 그런데 그 하느님 체험은 내 일상의 아주 작은 자리, 작은 사랑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사랑이 머무는 곳은 하느님이 함께 하시는 곳입니다. 국수집 할머니의 작은 이 사내의 증오 전체를 정화시켜 주었듯이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도농 본당간의 작은 사랑을 시작합니다. 내용으로는 아주 작은 나눔이지만 이제까지 잊어버리고 살았던 상대 삶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하느님을 만나는 중요한 체험이 되어 질 것입니다. 너무 바빠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자연의 사람들, 자연의 생산물들이 삶의 또한 면을 돌아보게 하는 여유도 주게 될 것입니다. 이런 교류와 사랑을 통해 우리는 아주 조금씩 하느님과 자연을 닮아가는 삶이 될 것입니다. 사랑은 하느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마침 저도 24년 전에 옆 본당인 독산동 주임으로 있었고, 그때는 여기 신자 분들도 꽤 많이 독산동으로 오곤 해서 우리 시흥 5동이 아주 눈 익은 곳이기도 합니다. 옛 추억이 서려 있는 곳과의 새 인연으로 인해 저도 삶의 새 활력소가 되어 질 것입니다. 대자연이 하느님 손 안에 순명하고 따르는 것은 그만큼 하느님과 자연은 한마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도 도농 간의 사랑과 나눔을 통해 하느님의 마음을 만들어 나갑시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아멘”

하느님의 크신 사랑으로 적성 성당과 시흥5동 본당에 친교와 나눔이 커지기를 기도합니다.

 

댓글 2

  • 2009년 6월 22일 오후 1:22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는 체험은 내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습니다.아멘!

  • 2009년 6월 22일 오후 9:41

    주님 보시기에 좋은 일이겠지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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