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통일 기원 미사

2009. 6. 21. 오전 5:19:42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민족의 통일과 화해를 위해서 기도하는 날입니다. 우리 사회는 많은 갈등들이 있어왔습니다. 최근에는 많이 없어졌지만 ‘지역감정’이 있었습니다. 특히 경상도와 전라도는 지역감정 때문에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이 지역감정은 그것을 통해서 정치적인 입지를 넓히려는 일부 정치인들에 의해서 조장된 점이 많았지만, 그 피해는 참으로 컸습니다. 빈부의 격차로 인한 갈등이 있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차별이 있었습니다. 비정규직인 근로자들은 늘 해고의 위험에 놓여있고, 실업자들이 늘어가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그들의 인권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즘 새로이 들어나는 ‘진보와 보수’의 이념 갈등도 있습니다. 진보는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정부는 시민들의 정당한 주장을 공권력을 앞세워 탄압한다고 주장합니다. 용산에서의 참사, 화물 연대 노동자의 죽음, 전직 대통령의 죽음, 서울 광장의 폐쇄 등은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생각합니다. 악화 일로에 있는 남, 북 문제도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보수는 진보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좌파라고 이야기 합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선출된 대통령과 정부를 흔드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법과 원칙에 따라서 과도한 시위를 진압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 사회의 갈등도 치유하기 어려운데, 최근에는 남과 북의 문제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남한 정부가 6.15 선언과 10.4 선언의 정신을 따르지 않는다고 비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성 공단’에 주었던 많은 특혜를 취소한다고 말을 합니다. 남한은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서 강력한 규제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마치 전 속력을 다해서 기차가 마주 오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이렇게 얽히고설킨 많은 문제들을 풀고 진정한 화해와 일치를 이룩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어릴 때의 추억이 하나 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입니다. 친한 친구와 구슬치기를 하다가 다투게 되었습니다. 결국 치고 받고 싸우고 말았습니다. 친구는 저의 머리를 잡고 누르고 있었고, 저는 친구의 급소를 잡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먼저 놓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서로 잡은 머리와 급소를 놓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한참이 지난 다음, 우리는 서로가 잡은 손을 놓았고, 그렇게 화해를 했습니다.

예전에 실상사 주지 도법(道法)과 수경(收耕) 스님은 ‘원망을 원망으로 갚으면 원망은 해결되지 않는다. 오직 참음으로써 원망은 해결되나니 이 가르침은 영원한 진리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시비(是非)란 본시 그른 것만 취한다면 해결되지 않으며, 옳고 그른 것을 동시에 놓아버려야 끝이 난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스님들의 이 말씀을 어릴 적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도 상대방이 먼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항복하기를 바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결코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같이 보일지라도 불씨는 늘 남아 있기 때문에 나중에 더 큰 갈등과 분열로 커져가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참으로 화해하고, 민족이 하나 될 수 있는가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너희가 마음속으로 뉘우치고,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서,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대로 너희와 너희의 아들들이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의 운명을 되돌려 주실 것이다.” 먼저 자신을 성찰하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힘으로는 힘든 일이지만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찰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용서는 조건이 없습니다.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용서는 용서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제2독서는 용서의 구체적인 행위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속량의 날을 위하여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주님의 크신 사랑이 함께 하시어, 우리 사회의 갈등이 치유되기를 기도하며, 남, 북의 화해와 일치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합니다.

 

댓글 2

  • 2009년 6월 21일 오전 7:33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아멘!

  • 2009년 6월 22일 오후 9:43

    용서와 화해, 주님께서 바라시는 일 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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