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꽃이 피어나는 계절입니다. 봄을 알리는 개나리, 진달래가 피어나고 있습니다. 아래녁부터 벚꽃도 피어 올라올 것입니다. 우리 성당의 마당에도 장미꽃들이 피고, 성모 동산이 있는 곳에도 꽃들이 피어날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은 대지는 이렇게 아름다운 꽃들을 품고 있었습니다. 대지가 꽃을 피우듯이, 우리들도 이 사순시기에 인내와 희생, 기도와 봉사의 꽃을 피울 수 있어야 겠습니다.
예전에 40일 피정을 한 적이 있습니다. 피정하는 곳에 예쁜 수선화가 피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랑하는 동생이 아파서 일찍 하늘나라에 갔는데, 동생을 기억하고, 동생을 위해 기도를 부탁하며 언니가 피정의 집에 수선화 길을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수선화를 따라서 걸어가면 동생을 기억하는 짧은 글귀가 있고, 동생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저도 그 길을 따라 가며, 하늘나라에 간 동생을 위해서 기도를 했었습니다.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님을 기억하며, 옹기장학회가 생겨날 거라 합니다. 꽃동네의 오웅진 신부님도 김수환 추기경님을 기억하며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한 재단을 만들 거라고 합니다. 추기경님은 돌아가셨지만 그분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명의 꽃들을, 사랑의 꽃들을 피어내고 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이런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난 자녀를 위해서 의학발전을 위한 기금을 내는 분도 있고, 불의의 사고로 졸업을 못한 아들을 위해서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재단을 만드는 분도 있습니다.
더 가지려고 하고, 남의 것까지 빼앗으려고 하는 세상입니다.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살려야 하는 것이 가장 커다란 목표인 세상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세계적인 금융위기는 나누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지금도 각 나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서 경제위기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금융위기의 원인은 우리가 너무나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용산의 참사는 불법적인 시위를 벌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만은 아닙니다. 경찰의 강제진압 과정에서만 발생한 것은 아닙니다. 개발의 이익을 함께 나누지 않고, 좀 더 많은 이익을 가지려는 우리 사회가 함께 만들어 낸 것입니다.
예전에 읽었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우화가 있습니다. 어린 소년과 나무의 이야기입니다. 소년은 나무의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나무 가지에 그네를 만들어서 놀았습니다. 소년은 자라면서 나무를 떠났지만 어른이 되어 돌아와서는 땔감을 위해 나무의 가지를 잘라냈습니다. 결혼을 하면서 가구를 만들기 위해 나무의 기둥을 잘랐습니다. 노인이 되어서 온 소년은 밑동만 나무에 걸터앉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으면서 가슴이 뭉클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우화도 있습니다. 욕망을 위해, 발전을 위해, 성공을 위해 무조건 올라가는 애벌레들의 이야기입니다. 왜 올라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남들이 올라가니까 따라 올라가는 생각 없는 애벌레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으며,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의 제1독서는 신학생들이 고백성사를 보면 보속으로 주던 성서 말씀입니다. 지난날의 모든 잘못을 뉘우치고, 새롭게 살려고 하는 학생들에게 예레미야의 오늘의 말씀을 주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 참 아름다운 말입니다. 이제 우리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삶을 살도록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새로운 법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도 아주 매력적인 말씀입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썩어야만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입니다.’ 지하에 있는 물을 품어내기 위해서는 ‘마중물’이 있어야 했습니다. 나의 희생과 나눔, 희생과 봉사가 사랑의 마중물이 된다면 이 세상은 바로 하느님의 나라가 될 것이라 이야기 하십니다.
오늘의 제2독서는 예수님께서 바로 그와 같은 삶을 살았다고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3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대지가 살아나듯이, 꽃이 피어나듯이, 우리들의 마음에 새법을 심어 얼마 남지 않은 사순시기에 사랑의 열매를 맺어가도록 했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