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 일본과 한국의 야구 경기가 있었습니다. 단순한 스포츠이지만 한국과 일본의 경기는 긴장감이 있고, 꼭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대대로 한국이 이겼으면 좋았겠지만 어제의 경기에서 한국은 일본에게 패했습니다. 그동안 한국 팀이 잘 해 주었기 때문에 비록 경기에 졌을지라도 선수들을 격려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준우승을 한 것에 대해 축하를 보내고 있습니다. 한국의 현실을 감안하면 준우승을 한 것도 대단한 성적이라고 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을 때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한국 팀은 앞으로도 국제무대에서 많은 경기를 할 것이고, 승패를 떠나서 경기를 즐길 줄 아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봐도 그렇습니다. 가장 기쁜 순간들도, 가장 슬픈 순간들도 다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성모님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엄청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직 남자를 모르는데 아이를 가질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마을에서 쫓겨나고, 삶의 모든 것들이 무너질 수도 있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들으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하신대로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간단한 말인 것 같지만, 이것은 결코 쉬운 응답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존심과 명예 때문에 나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거부할 때가 많습니다. 이기적인 마음과 욕심 때문에 나에게 주어지는 일들을 포기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그분처럼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고, 그분처럼 섬기는 것이고,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열매와 영광만을 가지려고 합니다.
사제로 살아가면서 변화된 저의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첫째, 많은 교우분들께서 제가 젊은 나이인데도, 저에게 경어를 사용해 주셨습니다. 물론 저의 인격과 저의 품위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제가 받은 사제의 직무를 존중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본당에서의 모임이 끝나고, 식사 자리가 마련되면, 저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 주셨고, 보통은 이동할 때도, 차를 준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술을 마실 때도, 저에게 먼저 따라 주실 때가 많으셨습니다. 젊은 신부에게는 무척이나 곤혹스럽고, 송구한 일들입니다.
셋째, “신부님 한 말씀 하시죠” 이런 이야길 자주 듣게 되었습니다. 정리할 때라든가, 무엇인지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그리고 선택을 해야 할 경우에 이런 이야길 자주 들었습니다. 때로는 상당한 부담감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넷째, “신부님이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이야기도 종종 듣게 됩니다. 예를 들면 청소를 한다거나, 책상을 나른다거나, 화분을 옮긴다거나, 물건을 들고 걸어가는 경우들입니다. “아닙니다. 저도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씀드리기도 하지만, 쪼금 곤란할 때가 있습니다.
다섯째, “신부님도 그런 거 하세요!”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신부님도 화장실을 가느냐! 신부님도 이런 음식을 먹느냐! 신부님도 노래방에 가느냐! 등등 이런 말씀을 들을 때면 “난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하게도 됩니다.
사람들이 절을 하는 것은 말 등에 있는 “십자가”를 향하여하는 것인데, 말이 자기한테 하는 것인 양 착각하고 건방을 떠는 어리석음을 보인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저 역시도 사제로 생활하면서, 교우분들께서 저를 아껴주고, 저에게 사랑과 관심을 보여 주시는 것은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저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다만 저의 직무가 너무나도 소중하고, 너무나도 거룩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종종 잊곤 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모님을 통해서 참된 신앙인의 길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성모님께 대한 각별한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구세주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신앙을 선포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원죄 없이 태어나셨다는 신앙을 선포합니다. 또한 성모님께서는 죄의 결과인 죽음을 거치지 않고 승천하셨음을 신앙으로 선포합니다. 또한 성모님께서는 평생 동정으로 사셨음을 교회는 오랜 전승 안에서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성모님의 외적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은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성모님의 삶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모님은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뜻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말하며 자신의 몸이 구원 사업의 도구가 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성모님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잔치의 즐거움이 계속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게 합니다. 예수님 또한 성모님의 그런 마음을 아시고, 아직 때가 되지 않았지만 혼인잔치를 더 풍요롭게 하셨습니다. 성모님은 혼인잔치에 손님으로만 간 것이 아니라, 그 잔치에 부족함이 없는지를 살피시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성모님은 십자가상에서 아들 예수님이 죽음 직전에 한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알았습니다. “어머니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사도들, 그 사도들이 함께 일구어낼 교회 공동체의 어머니가 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파티마에서, 과달루페에서, 루르드에서 발현하셨고, 우리들 신앙인의 위로와 힘이 되어 주십니다.
성모님의 그런 마음을 본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헤아리는 마음,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마음, 자신의 고통 보다는 사도들을 추스르고 교회를 걱정하는 마음, 바로 그것이 성모님의 마음입니다.
천주의 성모여!
당신 보호하심에 우리를 맡기오니, 어려울 때 애원하는 우리를 물리치지 마시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우리들 또한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