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신부님 사순특강 요약

2009. 3. 28. 오전 7:40:48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 저의 동창 이 동훈 시몬 신부님께서 ‘사순특강’을 해 주셨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알았으니 벌써 27년이 넘었습니다. 늘 신중하고, 사려 깊은 친구입니다. 어제 ‘행복한 공동체’라는 주제로 아주 좋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신부님은 먼저 행복과 만족에 대해서 구분을 해 주셨습니다. 만족은 원하는 것들이 채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족은 그것이 없어질 때 분노와 미움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물질적인 것들, 명예, 권력과 같은 것들입니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란 말도 그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만족과 행복을 혼동하며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복팔단’의 행복은 만족이라는 측면에서는 이해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면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행복은 영적인 것입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위로를 받고, 하느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행복은 사라지지 않으며, 지금은 가난하고, 슬프고, 병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들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운동을 배울 때도 ‘훈련’과 ‘목표’가 있어야 하듯이 영적인 것들도 ‘훈련’과 ‘방향성’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학교수업만 가지고는 모자라기 때문에 학원에서 공부를 하듯이 우리가 참된 행복에 이르는 영적인 여정을 걷기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은 상급학교 진학과 좋은 직장이라는 목표로 공부를 하지만, 영적인 훈련의 방향은 언제나 하느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에게는 교재가 있어서 그 진도를 따라 가듯이, 영적인 훈련의 주된 교재는 바로 ‘말씀’입니다. 현실의 삶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말씀을 통해서, 말씀과 함께 살아가면 우리는 내적인 ‘무게중심’을 잡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말씀’과 ‘하느님’이라는 무게 중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무게 중심이 잡혀있는 사람은 그 향기가 퍼져나가고,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행복은 혼자서 간직해서는 안 되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공동체 안에서 함께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공동체입니까? 하느님께서 아담을 만들고,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안쓰러워서 배우자인 하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공동체를 이루면 살아가게 됩니다. 부서지기 쉬운 아담은 생명력이 강한 하와를 만나 단단한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공동체를 이루면 모든 것이 안정되고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하느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와 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는 이미 우리가운데 와있으며, 아직은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의미 있는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과 같다.’ 밭이라는 것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 밭에는 자갈도 있고, 뿌려놓은 거름도 있고, 잡초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 밭에서 보물을 캐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공동체에는 모두가 착하고, 정직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안에는 분열과 갈등, 상처와 아픔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그 안에서 보물을 찾는 마음으로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공동체가 분열되고 갈등이 생기는 몇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밭에 잡초가 자라는 것과 비슷합니다.
첫 번째는 ‘핑계’입니다.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핑계를 댄 것처럼, 우리 사회에는 잘못된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적습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자녀들은 부모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핑계를 대면서 살아갑니다. 그럴 때 공동체는 심각한 균열이 생기고, 갈등은 더욱 커져갑니다. 돈을 준 사람은 있는데, 받은 사람은 없다고 하고, 성상납과 술접대를 한 사람은 있는데 그러한 접대를 받은 사람들은 없다고 합니다. 본당 안에서도 공동체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핑계를 대면 공동체는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는 ‘훼방꾼’입니다. 성서에는 이런 훼방꾼들이 많았습니다. 거짓예언자들, 예수님을 비방했던 율법학자들,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배반했던 제자들, 권력의 입맛에 따라 옮겨가는 군중들이 훼방꾼입니다. 훼방꾼들 중에는 열심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성서를 공부했고, 율법을 알았지만 본인들은 그 성서의 말씀대로, 율법의 정신대로 살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공동체가 분열에 이르는 것은 방향성을 상실한 열심한 사람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많이 알고, 많은 말을 하지만 ‘하느님 나라’라는 방향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3가지 독한 기운들이 나옵니다. ‘탐욕, 수치, 진노’와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독한 기운들이 공동체를 분열시키게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들어 갈 수 있습니까?
첫 번째는 관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듣기를 원하느냐, 보기를 원하느냐, 일어나고 싶으냐. 사람들의 관심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치유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하혈하는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지려고 했던 그런 마음을 보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중풍에 걸린 환자를 들것에 실고 온 이웃들의 마음을 보시고 고쳐주셨습니다. 공동체가 건강하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난하고, 소외되며, 아프고, 외로운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본당에 누가 외롭고, 누가 아프며, 누가 고통 중에 있는지 살피는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중심에 서야만 공동체는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시어, 그들에게 새로운 법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모세오경’입니다. ‘십계명, 계약법전, 성결법전, 사제법전, 신명기 법전’입니다. 이 말씀대로 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된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고, 우상을 숭배했으며, 마음이 완고해져서 하느님이 보낸 예언자들의 말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주변 강대국의 침략을 받아 망했습니다. 나중에 유배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다시 정리하였고, 성전을 세우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율법과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그리고 새로운 계명을 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의 계명입니다.

세 번째 공동체에는 축제와 친교가 필요합니다. 이 축제는 서로에 대한 잘못을 용서할 때 비로소 참된 축제가 됩니다. 이런 축제를 통해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고, 하느님의 말씀을 배우게 됩니다. 이 축제와 용서가 가장 명확하게 결합된 것이 바로 ‘미사’입니다. 미사는 용서와 나눔입니다. 하느님 말씀에 대한 갈증이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운동의 영성’은 계획을 세우고 일을 추진하며 앞으로 나가는 영향력입니다. 사도 바오로와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바로 운동의 영성을 지녔습니다. ‘원의 영성’은 앞으로 나가기보다는 현재에 머물며 있는 그대로 위로와 힘을 주는 영성입니다. 수도원의 영성이 이와 같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운동의 영성’과 ‘원의 영성’이 조화를 이루며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댓글 1

  • 2009년 3월 28일 오전 9:58

    듣기를 원하느냐.보기를 원하느냐.일어나고 싶으냐......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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