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가끔씩 영화를 볼 때가 있습니다. 저는 액션 영화, 로맨틱 영화, 시대 영화와 같은 장르를 좋아합니다. 보통 영화는 허구이며, 관객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기 위해서 만들어 집니다. 그런데 작년에 사회성이 있는 영화 하나가 관객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제목은 ‘도가니’입니다. 내용은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장애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봄을 받지 못했고, 오히려 힘을 가진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폭행을 당해 왔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 대한 폭행 사실이 알려 졌지만 지방의 유지이고 가진 것이 많았던 학교의 책임자는 가벼운 처벌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영화가 흥행을 하면서 힘없는 아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고, 힘을 가진 이들에게 가벼운 처벌을 해주었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있었습니다. 경찰은 다시 조사한다고 하지만 아이들의 억울함은 계속 될 것 같았습니다.
올해는 ‘부러진 화살’이 관객들의 호응 속에 상영되고 있습니다. 이 영화도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공정하게 재판을 하지 않았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70%는 사법부의 판결이 적법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것입니다. 법은 정의와 원칙에 따라서 공정하게 집행되어야 합니다. 그 법이 권력을 유지하는 도구가 된다면, 그 법이 가진 자의 편에 선다면 법이라는 이름을 가진 또 하나의 폭력일 뿐입니다. 검사와 판사는 단 한명의 억울한 사람도 생기지 않도록 신중하고 공정하게 기소하고 판결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법은 가진 자의 편이었고, 권력을 유지하는 도구로 사용된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우리는 공정하고 정의로우신 예수님의 판결을 볼 수 있습니다. 이야기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간음을 하다 잡힌 여인을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의견을 묻습니다. 이 여인을 어떻게 할까요? 당시의 법은 간음을 하다 잡힌 여인은 돌로 쳐서 죽이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잠시 상황을 봅니다. 떨고 있는 여인, 돌을 들고 여인을 죽일 자세인 흥분한 군중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판결을 내리지 않으시고 땅에다 무엇을 쓰고 계셨습니다. 군중들은 흥분을 가라 앉혔고 다시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목소리도 조금은 누그러졌습니다. ‘이 여인을 어떻게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중에 죄가 없는 분들이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십시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다시 땅에 무언가를 쓰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을 해 봅니다. 자신들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하나 둘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떠나는지 보시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떠난 후에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이야기 하십니다. ‘나도 당신의 죄를 묻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마십시오.
우리의 사법부가 예수님처럼 지혜롭게 판결을 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정말 억울한 사람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신념과 소신을 가지고 판결했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도 때로 너무나 쉽게 남을 판단하고 상처를 줍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욕하고, 평가할 때는 정말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신앙인은 처벌하고 심판하기 전에 먼저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