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입으로만 읊지 말고 실천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어느 고을에 좋은 이야기라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찾아가서 듣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십년이 넘도록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온갖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 삶이 조금도 거룩해지거나 훌륭해지지 않았음을 깨달은 그는 고민 끝에 마을에서 존경받는 한 사제를 찾아가서 사정을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사제가 다음과 같이 제안했습니다.
“여보게, 큰 강에 가서 돌을 하나 주워오게.”그가 돌을 주워오자 사제가 다시 일렀습니다.
“그 돌을 작은 시내에 가서 씻어 오게나.”
윤이 나도록 깨끗이 씻어오니 그제야 사제가 설명했습니다.
“큰 강에는 많은 물이 쉴 새 없이 흐르지만 그 물이 물속의 많은 돌을 닦을 수는 없네. 반면 작은 시내는 물이 작지만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있어서 이렇게 돌을 반짝이게 만들 수 있지. 좋고 훌륭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것은 큰 강물에 비길 수 있다네. 그렇지만 비록 작을지라도 시냇물을 자기 손으로 직접 떠서 닦아야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네.”
왕양명(王陽明 중국 명대(1368~1661) 중기의 대표적 철학자)의 철학 어록인 전습록(傳習錄)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지자행지시요 행자지지성(知者行之始 行者知之成)이라.’ 즉, 앎은 행하는 것이 시작이요 행하는 것은 앎의 완성입니다. 세상에는 지혜도 많고 학식도 많으나 이를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계명과 교회의 가르침을 충실히 지키리라 다짐합니다. 그러나 매번 마음만 간절할 뿐 조금만 힘들어도 내팽개쳐 버립니다. 성경을 읽고 들으며 그 말씀을 따르겠노라 주님 앞에 약속도 합니다. 그러나 약속만 반복했지 또다시 세상에 한눈을 팝니다.
성체를 모시고 기도하며 자신을 죽이고 낮추리라 마음먹습니다. 그러나 미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사람 위에 올라서려고 안감 힘을 씁니다. 피정 강의나 미사 강론을 들으며 이제는 용서하리라 결심합니다. 그러나 늘 결심만으로 그칠 뿐 어느새 복수의 칼을 갈고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듣고 보고 읽어도, 아무리 알고 깨달은 바가 많아도,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그것이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한 사람의 진실성은 그의 행동에서 비로소 드러납니다. 행동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웅변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삶으로서 말해야 합니다. 내 생각이 곧 내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모습을 내게서 환히 꽃피워야 합니다. 마음과 말과 지식으로만 신앙생활을 하지 말고 행동과 실천으로 완성해야 합니다. 야고 2, 26 말씀에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라고 하십니다.
그동안 코로나 19로 팬데믹 (pandemic)으로 인하여 우리 레지오도 활동에도 많은 제약을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팬데믹 상태가 해제됨에 따라 레지오도 차츰 활기를 띄고 있습니다. 꾸리아에서는 대대적인 단원 모집에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 다윗의 탑 Pr.도 새로운 단원 두 분이 입단하셨고 지난주일 교리반에 입교한 형제님도 세례 받으면 함께 활동하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지난 주 회합 때 이제 새 단원은 더 받지 않겠다고 하였더니 요나 형제님께서 세 명 더 받아 열 두명이 되면 분단을 하여야 되지 않겠느냐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 37-38)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목표인 수확할 밭의 일꾼은 레지오 단원을 확충하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 복음을 입으로만 읊지 말고 실천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