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향한 눈
어느 기억 상실증에 걸린 남자가 전문의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의사는 진단 결과를 이렇게 말합니다.
“기억을 되살리려면 당신은 양쪽 눈의 시력을 모두 잃게 됩니다. 기억을 되찾으시겠습니까? 아니면 두 눈의 시력을 그대로 유지하시겠습니까? 선택은 당신이 하십시오.”
그는 심사숙고한 후 대답했습니다.
“저는 기억을 되살리기보다는 시력을 그대로 유지하겠습니다. 제가 과거에 어디에 있었느냐를 보기보다는 앞으로 어디로 가야할지를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기억’은 과거를 의미하고 ‘시력’은 미래를 내다보는 희망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미 지나가버리고 없는 과거의 일에 사로잡힐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미래는 다릅니다. 미래는 항상 새로운 가능성으로 열려 있습니다. 과거의 실패나 성공에 얽매여 있다면 앞으로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삶을 살면서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어 미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상지의 옥좌는 2주 전 상급평의회에 제 6차 종합보고를 하였습니다. 간부님들께도 오늘 종합보고 내용을 전달해 드렸습니다만, 제5차 종합보고에 비하면 그 활동 내용이 많이 저조함을 볼 수 있습니다. 단원 숫자도 전년에 비하여 4명이 감소하였고 교육 피정 참여율도 저조하였습니다. ‘교우 돌봄 활동’과 ‘어려움을 겪는 분 돌봄 활동’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나 환경적인 문제를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만, 같은 환경에 있는 타 꾸리아와 견주어 볼 때, 이 문제를 ‘레지오 정신’에 더 비중을 두고 싶습니다. 특히 교육 피정 참여율이 낮은데서 오는 영적 해이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는 기억을 되살리기보다는 시력을 그대로 유지하겠습니다. 제가 과거에 어디에 있었느냐를 보기보다는 앞으로 어디로 가야할지를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라는 기억 상실증에 걸린 남자의 대답은 우리 자신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하며, 우리가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야 할 교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태 9,9-13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었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 하였다.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이렇듯 예수님께서도 과거의 잘못에 대하여 묻지 않으셨습니다.
제6차 종합보고는 지나간 과거입니다. 우리 상지의 옥좌 꾸리아는 제6차 종합보고 보다 더 풍요로운 제7차 종합보고를 위해 열심히 달리면 되는 것입니다.
각 Pr.단장님들께서는 연초에 2016년도 Pr.사업계획을 세우시길 부탁드립니다. 교본 제 3장의 ‘레지오의 정신’으로 모범활동에 대한 계획을 미리 세워 실천하여야만 교본 제 12장의 ‘레지오의 외적 목표’를 충실히 이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금천꼬미씨움 단장까지 포함하면,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9년)을 주님 사업을 위해 저와 함께 열심히 수고해주신 우리 4간부님들과 모든 단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우리 단원님들의 가정에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