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빠진 비판

2016. 1. 2. 오후 4:20:27

글자

사랑이 빠진 비판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힘이 있다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럽게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코린 13,1-3)

 어떤 보살이 스님 한 분을 도왔습니다. 1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뒤를 보살폈습니다. 이윽고 득도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러자 자신의 딸을 스님에게 보내며 말했습니다.

“스님을 만나면 그 스님을 끌어 안거라.”

젊은 딸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스님을 만나자 살포시 끌어안고 힘을 줬습니다.

하지만 스님은 무감각했습니다.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돌을 끌어안은 듯 딸에게는 차가운 느낌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난 보살은 스님의 공양을 끊었습니다. 사람들이 이유를 묻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도를 통한 사람을 원했지 목석을 원한 것이 아니라오. 도통한 사람에게 어찌 더운 피가 흐르지 않는단 말이요? 그런 껍데기를 도와줄 수는 없소이다.”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 하느님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하느님의 사랑도 느낄 수 없습니다. 사람의 정을 모르는데 어찌 하느님의 정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인생의 의미는 사랑을 베풀 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것을 내놓으면 삶의 기쁨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베풀지 않기에 허무감을 만납니다. 메마른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불만이 많은 교우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자신의 것을 내놓지 않으면서 이웃을 탓합니다. 단체에 책임을 전가합니다. 자기 목소리는 없고 들은 것만 이야기 합니다. 새로운 것 같지만 조금도 창조적이지 못합니다. 자신의 것을 내놓는다는 것, 그것은 금전적인 것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희생적 봉사, 재능 기부, 단체의 리더 등 모든 부분에 대한 봉헌을 말합니다. 아는 것과 실천은 다릅니다 

사람에게 뜨거운 정이 없다면 신앙의 깊이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 말씀을 통해 당신께서 하신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바뀌기를 요구합니다. 내 말은 옳고 내 생각은 율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아닌 상대방이 바뀌기를 바랍니다. 나 자신을 바꾸지 않으면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영접을 하고 받아들이면 하늘의 힘을 체험할 수 있는데 놓치고 있습니다 

사랑이 빠진 비판은 발전이 없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침묵만 못합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신앙에 대한 애정도 없습니다. 말로는 신앙을 따른다 해도 마음은 콩밭에 가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예화(例話)에서 보살이 득도했다는 스님에 대한 공양을 끊은 것 역시 더운피(사랑)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변화를 싫어하면 복음의 바리사이가 됩니다. 내가 남을 먼저 사랑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이 나를 사랑해주기를 원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이 아닙니다. 내안에 바리사이의 흔적이 없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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