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생쥐가 하느님 앞에 나와 부들부들 몸을 떨면서 하소연을 했습니다.
“하느님, 저는 도저히 겁이 나서 못살겠습니다.”
“왜 그렇게 겁이 나느냐?”
“고양이 때문에 겁이 나서 못살겠습니다.”
“그러면 고양이로 만들어 줄까?”
그래서 하느님은 생쥐를 고양이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그 고양이가 찾아와서는 하느님께 말했습니다.
“하느님, 마당에 있는 개가 무서워서 못살겠습니다.”
하느님은 그 고양이를 개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또 그 개가 와서 말했습니다.
“하느님 도저히 못살겠습니다.”
“또 왜 그러느냐?”
“호랑이 울음소리만 들어도 도저히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하느님이 말했습니다.
“그래, 너는 고양이가 되어도 개가 되어도 항상 생쥐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구나. 다시 생쥐로 돌아가거라.”
그래서 그 생쥐는 영구히 생쥐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생각과 행동이 바뀌지 않으면 진정한 변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생쥐는 자신의 근심거리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불안에 떨기만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어떠한 두려움이 있습니까? 그 두려움을 떨쳐내야만 여러분이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자기의 일이 바라는 대로 잘 되지 않고 꼬이기만 한다고 하느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다가 급기야 하느님으로부터 돌아서서 냉담을 하게 됩니다.
신앙은 믿음입니다. 자신의 생활 안에서 평화를,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하느님께 간구하는 기도 중,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한, 나 자신보다는 가족이나 이웃을 위한 기도를 하느님께선 제일 잘 들어주신다고 합니다. 생쥐처럼 타당성이 없는 무리한 것을 소원한다면, 하느님의 응답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요. 과하면 부족 하느니만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끝으로 로마 12,1-2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묵상하도록 하시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내가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