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고백
신앙을 즐기십시오. 신앙은 생활이여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을 무거운 짐 인양 부담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이 수고(봉사)하는 것은 좋아 보이나 내가 수고를 하기엔 왠지 내키지 않은 것은 신앙 안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냉담교우를 자주 접합니다. 우리 주위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냉담교우들이 많습니다. 그 분들을 만날 때마다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권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답변은 대동소이 (大同小異) 합니다.
“지금은 바빠서요. 다음에 나갈게요. 직장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요. 먹고 사느라 힘들어서요. 다음에 내가 알아서나갈게요.” 등등
신앙은 관념이 아니라 생활이어야 합니다. 신앙이 생활로 바뀌면 두려움도 없어지고 고통도 번민도 미움도 모두 살아지게 됩니다. 하느님 안에 살면 하루 생활이 즐겁고 활기차고 모든 일에 힘이 생깁니다.
미국의 철학자 클레이풀 교수가 한 친구 집을 방문했다가 그곳에서 두 팔과 두 다리가 없는 친구 여동생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소녀는 기형아였는데, 예술에 대한 정서가 발달해 특히 음악과 미술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클레이풀이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네 처지라면 아마 나는 견뎌내지 못했을 거야. 무엇이 너를 이렇게 밝은 얼굴로 바꾸어 놓았니?”
그러자 소녀는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습니다.
“제가 가진 건 너무 많아요. 자, 보세요. 음악을 듣고 명작을 읽을 수 있는 귀와 눈이 있죠?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도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중한 하느님이 내 마음 속에 계시죠. 이렇게 저에게 보물이 많은데 왜 슬프겠어요?”
생각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습니다. 심지어 사람의 표정까지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보물이 땅속에 묻혀있으면 그것은 보물이 아닙니다. 그냥 하나의 돌멩이에 불과합니다. 자신의 마음 안에 사랑의 씨앗을 심었을 때 비로소 번쩍번쩍 빛나는 보물이 탄생하는 것이지요. 소녀의 고백처럼 말이 예요.
앞에 소개한 소녀는 팔과 다리가 모두 없지만 자신의 마음 안에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에 항상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밝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녀는 신앙 안에, 하느님 안에 살고 있기에 자신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할 힘이 있는 것입니다.
소녀는 몸은 비록 장애지만 얼은 그 어느 정상인보다도 건강하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소녀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우리는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판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천국은 죽어야만 가는 곳이 아니랍니다. 오늘이 나에게 최고의 날이고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항상 감사하며 신앙 안에 살아간다면 바로 지금 이시간이 우리에겐 천국인 것이지요.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새기며, 땀과 수고를 아끼지 맙시다. 어차피 이 몸뚱이는 죽으면 썩어 한줌의 흙이 될 것을....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