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받은 사람
한 젊은이가 몇 백 달러나 되는 회사 돈을 유용했습니다. 그러다 돈이 없어진 사실이 드러나 젊은이는 상무실로 불려갔습니다. 그는 자신이 해고당하여 감옥에 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상무는 불안해하는 젊은이에게 “돈을 횡령한 것이 사실이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예, 사실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나 상무는 놀라운 얘기를 했습니다.
“자네를 해고하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서 일하도록 조치한다면 앞으로는 자네를 믿을 수 있겠는가?”
“물론입니다. 상무님. 앞으로는 굳게 믿으셔도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일로 배운 것이 많습니다.” 젊은이는 어리둥절한 가운데 힘주어 말했습니다.
상무는 이 젊은이가 진실로 뉘우치고 있음을 꿰뚫어보며 말했습니다.
“난 자네를 고발하지 않겠네. 그리고 맡은 일을 계속하게.” 그런 다음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자네가 꼭 알아두어야 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네만, 이 회사에서 유혹에 넘어갔다가 선처 받은 사람은 자네가 두 번째 일세. 첫 번째 사람은 바로 나였다네. 자네가 저지른 잘못을 나도 저질렀다네. 지금 자네가 받은 선처를 나도 받았으며, 우리 두 사람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느님의 은총뿐이라네.”
자신이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가장 깊이 사랑한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용서를 가장 잘하는 사람은 용서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노력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은 하느님의 깊고 깊은 사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고하신 예수님을 박해하고 그를 채찍질 하고 얼굴에 침을 뱉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까지 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며, 속죄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수난시기(사순시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죽으심을 당한지 사흘 만에 우리들 앞에 ‘짱’하고 나타나시는 예수님을 복음을 통해서 만나게 됩니다.
성목요일 복음(요한 13,1-20)에서는 예수님께서 일일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상대의 잘못에 대하여 단죄(斷罪)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신 것,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도 주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사랑받는 제자가 되는 것 그것은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