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겸손이고 봉사입니다
시냇물은 흘러 강으로 가고, 강물은 흘러 바다로 갑니다. 누구도 의심 못하는 자연의 걸음이고 순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 전에 할 일이 있습니다. 시냇물과 강물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환경속의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바다를 이루기 전을, 강을 이루기 전을, 시냇물이 만들어지기 전을 꼼꼼히 진단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래야 시냇물이 강이 되고 바다를 이루는 건강한 순환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관계 속에서 유통되는 모든 감정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신과 불만으로 오염된 상태로는, 결코 순조로운 흐름을 만들 수 없습니다. 부패되고 함부로 버려진 감정들은, 아무리 주고받아도 건강한 관계로 회복될 수 없습니다.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불신을 형성하는 침전물이 생깁니다. 정화되지 못한 무책임한 말들은 불만의 기름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집에 가훈을 정해놓고 가훈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저의 집에도 가훈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최선을 다한 후에 오직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정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애써왔습니다. 그러나 요즘 KBS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을 보면서 그 집 가훈에 푹 빠졌습니다.
그 집 가훈이 ‘입장 바꿔 생각하자’였습니다.
역지사지 (易地思之)란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한다는 뜻으로 나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을 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더러는 나 자신에게도 이롭지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말을 하기 전에 입장을 바꿔 생각을 한다는 것, 그것은 가정과 사회, 더 나아가 온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초석(礎石)이 되지 않을까요.
말을 하기 전에 입장을 바꿔 생각을 한다는 것, 이 또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거창하게 생각되는 ‘진인사대천명’보다는 현실적이고 생활 속에 젖어 있는 말이라 생각되어, 가훈을 ‘입장 바꿔 생각하자’로 바꿔 붙였습니다.
어느 높은 위치(자리)에 있다 보면 크게 착각의 오류에 빠지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권한을 자신에게 부여된 특권으로 생각하고 망각하여 아랫사람들을 내리 누르는 통솔의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배려와 존중의 수단이 아니라 강압적 통솔과 지배의 구도로 사용을 합니다. 참으로 착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누군가에게 권한이 부여되었다면 그것은 자신에 맡겨진 아랫사람들을 좀 더 사랑하라고, 그들을 위해 좀 더 봉사하라고 주어진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권한을 주신 것은 강압적 일방통행이 아니라 이성적, 논리적, 상호적이기를 원하십니다. 다시 말해 ‘위로부터의 권위’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권위’를 행사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권위를 베푸셨는데, 그 권위는 군림하고, 섬김 받고, 억압하는 권위가 절대 아니었습니다. 묶인 사람에게 해방을 선포하라고, 병자들에게 치유를 선물로 주라고, 죽어가는 사람에게 생명을 다시 안겨 주라고, 결국 봉사하라고, 더 많이 사랑하고 겸손하게 살라고 제자들에게 권위를 베푸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고 그들의 발에 입맞춤을 하신 것은 우리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주신 권위입니다. 결국 권위의 배경은 겸손이고 봉사이며 사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직장 안에서 단체나 공동체 안에서 조금이라도 권위를 지닌 분들, 묵묵히 제자들의 발 앞에 엎드린 예수님의 겸손한 얼굴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분의 자상하고 따뜻한 손길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더듬어보면 우리에게 진리를 말씀하신 다음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요, 형제입니다. 그러나 이를 거부하고 역행하는 사람, 그는 과연 어떤사람일까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