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의 친구

2013. 8. 3. 오후 4:29:10

글자
세 명의 친구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세 명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제일 친한 친구는 그가 매일 만날 정도로 절친하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친한 친구는 그가 아주 소중히 여기기는 했으나 첫 번째 친구 때문에 자주 만날 기회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세 번째 친구에 대해서도 참으로 소중하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앞의 두 친구와 만나는 바람에 거의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 사람이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가장 친한 첫 번째 친구는 죽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지자마자 그의 곁을 떠나버렸습니다. 두 번째 친구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면서도 그의 무덤까지만 같이 가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친구는 그가 죽는 순간뿐만 아니라 하느님께 인도되는 시간에도 함께 하였습니다.
 
여기서 첫 번째 친구는 돈이고, 두 번째는 가족이며, 세 번째는 선행입니다. 우리가 가장 가깝게 생각하는 친구가 실제로는 결정적으로 함께해 주기를 바랄 때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시하는 첫 번째 친구인 돈, 그것은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생명과 연결된 커다란 사건(살인 사건)은 많은 돈 때문에 일어납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재벌 형제들의 다툼, 재벌들의 가족 간의 법정 싸움은 심심치 않게 세상을 떠들어댑니다. 가질 만큼 가진 그들이 무엇이 부족해서 더 많이 차지하지 못해 혈육을 외면하면서까지 다툼을 벌이고 있을까요? 돈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걸림돌이 될 때가 많습니다. 어느 기관에서 몇 십억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을 일정 기간이 세월이 흐른 후 어떻게 살고 있는지 실태조사를 했더니 대부분이 복권이 당첨되기 전보다 황폐화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가는 날, 억만금을 가지고 있다한들 소용이 없겠지요.

두 번째 친구인 가족 역시, 내가 많이 퍼주고 사랑을 듬뿍 주어야 퍼줄 때 그 동안만 곁에 있습니다. 제 친척 중에 5남매를 두고 있는 홀어머니가 노환으로 거동이 어려운 상태였는데 5남매가 모두 모시기를 거부하여 요양원에서 외롭게 세상을 떠나시는 분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가족들은 그 때만 잠시 기억을 해줄 것입니다. 그러나 가는 길을 함께 할 수는 없습니다.

세 번째 친구는, 하느님 앞에까지 함께해 줄 친구는 선행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나 자신의 욕심만 생각하지 않고 이웃과 나누는 삶이야말로 우리 신앙인이 가야할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교본 제37장 활동의 예와 방법 중 3576<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활동>에서 레지오는 즉각 그리스도의 보잘 것 없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위한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이 점을 등한시 하는 경우가 자주 있어서 가톨릭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있다.”라고 지적하며 우리 레지오는 두려움 없이 이 일을 해야 한다.’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마태 6,19-21의 말씀에서 우리에게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간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가지도 못한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라고 말씀 하십니다. 
선행은 곧 사랑의 실천입니다. 사랑의 실천은 나 혼자서가 아닌 공동체가 함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2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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