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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평에 실린 최준식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교수가 최근에 발간한 책
'전생 이야기' 그리고 '사후생 이야기'라는 책 소개를 읽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 했었습니다.
책은 언젠가 사서 읽고 싶네요.
카카오 스토리에 정리해 올렸던 내용입니다.
카스의 제목은 전생과 사후생 그리고, 영생..
1. 어차피 한 번 뿐인 인생인데 사람들은 왜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가?
가톨릭 신자로 살아가며 매주 미사에 갑니다. 가끔 드는 생각이 어차피 한 번 뿐인 인생인데
사람들은 왜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가죠.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번 생에서 무언가 이루어야 할
것이 있는 것처럼 착하게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2. 그냥 아무 생각없이 내뱉는 말 중에 이런 것이 있죠. -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졌길래.. 아니면 내 전생이
어떤 것 아니었을까 하는 것들..
왜 이런 말들을 할까요. 살아오며 들었던 습득의 효과일까 아니면 진짜로 믿기 때문일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어떤 이유에서 이런 생각과 말을 하게 되는지.. 매주 되뇌이는 기도 중에 이런 것이 있죠. '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아멘!!' 우리에게 육신의 부활은 어떤 것이고 영원한 삶이 영생이라면 전생과 후생이
있다는 의미가 되는데..이 사실을 나는 믿고 있을까요?
3. 무의식 안에 우리가 알고 있는 영혼의 영생은 자연적인 것인가? 아니면 종교적인 것인가?
2번의 전생, 후생과 고리가 연결된 문제네요. 종교를 갖기 이전에도 어렴풋이 기억하는 것이 바로 이겁니다.
그때에도 저는 이런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드는 생각 원래 인간이 나약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종교라는 것이 더욱 고착화 시켰는지 구분이 되지 않네요.
4. 내가 나일 수 있는 것은 육체 때문인가? 나라고 자각하는 의식 때문인가?
욕심의 근원을 찾다보니 드는 생각입니다. 의학적으로 삶과 죽음을 구분하는 것이야 간단합니다.
그냥 육체의 근본적인 신호가 없어지면 죽는거죠. 그러나, 종교적으로 우리는 죽음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음 생으로 들어가는 출입구 정도로 인식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나일 수 있는 것은 이 삶을 살고 있는 육체 때문인지.. 아니면 나라고 자각하는 자의식 때문일까요.
5. 현재를 지각하는 우리의 지금이란 시간은 선형으로 존재하는가? 공간형인가?
예전에 시간에 대한 책과 몇가지 생각으로 저도 알 수 없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만.. 시간은 우리에게
무엇인지.. 공간과 분리할 수 없는 것임에도 굳이 분리하여 생각하려는 이유는 저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선형으로 구분하는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가 과연 그렇게 순서적으로 오는 것인지 아니면
공간과 동시에 존재하여 구분의 의미가 있을 수 없는 것인지..
6. 내가 믿는 영생은 언제나 나의 영생일까? 모든 것의 영생일까?
영생을 믿고 있는 나는 나만의 영생을 추구하며 살아가는지 아니면 모든 사람과 함께 하는 영생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지..
7. 차원이 다른 곳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내가 있다면 그는 나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인가?
영화 'Another Earth'에서 받은 질문입니다. 영화적 상상이지만 차원이 다른 곳에 존재할 수 있는 나..
그 존재와 마주친다면 그 존재가 정말 나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일까?
8. 오늘 내가 과거의 한 때에 머물러 있거나 특정한 미래에 있다면 오늘과 과거, 오늘과 미래의 시간과
공간은 진상일까? 허상일까?
불교의 고승들이 던졌던 질문이기도 합니다. 7번의 질문과 별반 다르지 않네요. 구체적이냐 아니면
추상적이냐 하는 차이뿐..
9.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모든 질문을 포괄하는 단 하나의 것이죠. 인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
구체적이면서 추상적인 것.. 아직 아무도 모르는 스스로가 찾아야 하는 숙제..
생각없이 살다가도 문득문득 드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며, 비어 있지만
비어 있지 않은 그 무엇..우리의 인생입니다.
생각없이 살기..
2013. 7. 4. 오후 12:3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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