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간 화요일

2011. 4. 5. 오전 8:08:29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1986년에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군인들의 특징은 명령과 계급에 따라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계급이 높은 사람은 명령을 내릴 수 있고, 계급이 낮은 사람은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처음 자대배치를 받아서 내무반에 도착을 했을 때의 일입니다.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고참병들은 복장도 자유로웠고, 주로 침상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습니다. 내무반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중간 계층인 일병과 상병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신임 병을 바라보았고, 관물대 정리를 하였습니다.

저는 주로 내무반 바닥을 닦거나, 고참들의 신발 정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텔레비전의 리모컨이 없었습니다. 저는 인간 리모컨이 되어서 고참들이 채널을 이야기하면 텔레비전으로 가서 번호를 돌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는 일입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너무나 당연한 일들이었습니다. 요즘의 가전제품들은 대부분 리모컨이 있어서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직접 제품을 조작해야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38년 동안 몸이 아파서 누워있었던 환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베짜타’라는 연못에 몸을 담그면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할 수 도 있었지만 그 환자는 스스로 움직일 수가 없어서 연못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환자를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건강을 회복하길 원합니까?’ 환자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원하지만 아무도 저를 저 연못으로 데려가 주질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크신 능력으로 누워있는 환자를 연못으로 데려가지 않으시고 직접 고쳐주셨습니다. 연못이 사람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연못은 하나의 도구였습니다. 사람을 치유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였습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그분들은 하나씩 이유가 있었습니다. 마치 누워있던 환자가 스스로 움직일 수 없어서 연못으로 갈 수 없다고 말한 것과 비슷합니다.
경제적인 이유를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신부님 제가 하는 일이 조금 잘 되면 성당에 나가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부자들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지금 가난해도, 지금 힘들어도 하느님을 찾으면 하느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가족들을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이가 대학에 합격하면 나오겠다.’라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남편이 나가면 함께 나가겠다.’라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 좋겠지만 지금 내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족들을 하느님께로 이끌어 들이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이웃들과의 관계를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우들 중에 마음에 들지 않는 분이 있어서 성당에 안 나온다.’라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생각이 다르고 의견이 다른 분들과 만나게 됩니다. 때로는 금전적으로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것은 작은 것 때문에 큰 것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따른다면 주님께서는 크신 능력이 있기 때문에 재정적인 이유가 있어도, 가족들과의 문제가 있어도, 이웃과의 문제가 있어도 우리를 치유해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위로와 축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기도는 언제나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리모컨입니다.
“ 주 하느님, 깨끗한 마음을 제게 만들어 주시고, 주님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주소서.”

댓글 1

  • 2011년 4월 5일 오전 8:55

    저 역시...경제적인 이유로, 가족들과의 문제로, 이웃들과의 관계로 교회를 멀리했던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여전히 같은 문제들을 안고 있지만... 주님품안에 있는 지금, 하느님의 위로와 축복으로 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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