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2주간 수요일

2011. 3. 23. 오전 6:42:38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순기간 동안 매주 금요일에는 ‘십자가의 길’기도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넘어지시고, 조롱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시고, 죽어 묻히십니다. 어찌 보면 한 사람의 고통과 절망의 순간순간들입니다. ‘영광의 길, 기쁨의 길, 지도자의 길’도 있을 법 한데, 교회는 유독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가르침, 말씀을 정리하면 영광의 길, 기쁨의 길, 지도자의 길을 만들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은행나무 사거리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600년 이상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무는 많은 것들을 묵묵히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어쩌면 임진왜란도 보았을 것이고, 청나라의 침략, 일본의 식민지배, 6, 25 한국전쟁도 보았을 것입니다. 엄청나게 내리는 비 때문에 많은 것들이 떠내려가는 것도 보았을 것입니다. 기쁨과 즐거움만 있었다면 은행나무는 저 오랜 세월을 견디어 내지 못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거센 눈보라도, 세찬 비바람도, 여름의 뜨거운 태양도 다 받아들였기 때문에 오늘까지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2000년 동안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영광과 기쁨, 명예와 권능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주님께 의지하고, 주님만을 따를 수 있는 것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죽음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면서 ‘5처와 6처’를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 위로를 드린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5처에서 우리는 길을 가던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는 것을 묵상합니다. 우리는 본의 아니게 남의 십자가를 지고 갈 때가 있습니다. 형들이 있는데도 늙으신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가 있습니다. 전날 술을 많이 먹어서 출근하지 못한 동료의 일을 대신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준비한 일들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쁘게 받아들이면 나에게 도움이 되지만 마음에 앙금이 있으면 하면서도 짜증이 나고, 괴롭습니다. 저도 부모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형은 사업에 실패해서 더 이상 부모님을 모실 여유가 없습니다. 동생은 수도자이기 때문에 더더욱 부모님을 모시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어렵게 부모님을 위한 집을 마련하고, 매달 생활비를 드리고, 병원에 가야할 일이 생기면 치료비와 입원비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은 그렇게 15년을 했지만 제게는 더 많은 축복과 은총이 있었습니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갔기 때문에 우리는 2000년 동안 시몬을 생각하고, 시몬의 희생을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내가 누군가의 십자가를 지고 간다면, 그것이 주님의 십자가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6처에서 우리는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 드림을 묵상합니다. 교회의 전승은 베로니카 성녀에 대해서 두 사람 중에 하나라고 말을 합니다. 한명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던 하혈하는 여인일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오랫동안 하혈을 하던 여인은 주님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언제나 주님을 따라 다니던 그 여인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구원해 주신 주님께 사랑을 드립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다른 한명은 자캐오의 아내라고 말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았던 자캐오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캐오의 집을 방문하셨고, 자캐오와 그의 가정이 구원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캐오의 아내는 예수님의 넘치는 사랑과 자비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고난의 길을 가실 때 용기를 내서 주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 드렸습니다. 이 또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십자가의 길에서 5처와 6처가 없었다면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외롭고 힘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시몬과 베로니카와 같은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분들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진한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건강할 때, 사업이 잘 될 때, 돈이 많을 때는 주위에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플 때, 사업에 실패했을 때, 모든 것을 잃어 버렸을 때에도 곁에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국경없는 의사회’가 있습니다. 그분들은 가난한 나라, 전쟁 중인 나라를 찾아다닌다고 합니다. 그런 곳에 가서 환자들을 도와주고, 사랑을 실천합니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개인이 아닌 단체로서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에서 사랑을 실천하다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태석 신부님도 있습니다. 신부님은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매주 말 없이 차량 봉사를 하시는 분들을 봅니다. 남들 보다 2시간 먼저 성당에 오셔야 합니다. 가파른 언덕을 운전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조금만 주변을 돌아보면 또 다른 시몬과 베로니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십자가의 길’에서 주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이름 없던 시몬과 베로니카를 만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려던 제자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인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명예와 지위 그리고 권력을 먼저 생각했던 제자들의 모습일까! 아니면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갔던 시몬, 주님의 얼굴을 닦아드렸던 베로니카의 모습일까!

 

댓글 1

  • 2011년 3월 23일 오전 7:29

    십자가의 의미가 신부님 강론으로 오늘 새롭게 다가옵니다. 저에게 주어진 십자가... 주님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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