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서울대교구의 교구장이신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님의 사제서품 5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교구에서는 명동 성당에서 추기경님을 위해서 축하미사를 마련하였습니다. 추기경님께서 영, 육간에 건강하시도록 기도 중에 함께 하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사순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가끔씩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들에 대해서 묵상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할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나를 배반할 사람이 있습니다.’
유다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저는 아니겠지요?”
많은 경우에 배반은 절친했던 사람들에게 당하는 것들 봅니다. 많은 것을 나누었던 사람들에게 당하는 것들 봅니다. 본당에서도 보면 그렇습니다. 단체의 간부들끼리도 없는 자리에서는 상대방의 흉을 보기도 합니다. 이런 배반은 사제/ 수녀/ 평신도 모두에게서 나타나곤 합니다. 저는 교구에 있을 때 본당에서 ‘투서’를 보내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본당 신부님의 잘못을 지적하고, 본당 신부님을 비난하는 그 사람은 사실 본당 신부님과 늘 가까운 자리에 함께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예수님을 팔아 넘겼던 그 유다와 비교해서 “나는 아니죠!”라고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베드로 사도를 생각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늘 모범생이었고, 예수님께 칭찬도 많이 받았습니다. 기도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예전에 이스라엘과 아랍이 전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몇 번의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중에 한 원인은 국민들의 자세였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유학을 하던 학생들 중에서 이스라엘 학생들은 전쟁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들 조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구해서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아랍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전쟁으로 위험해진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싸움의 승패가 갈린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유다와 베드로는 똑같이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다와 베드로의 삶은 그 끝이 달랐습니다. 유다는 절망하였고, 희망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하느님께 돌아오려는 용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베드로는 절망을 버렸고, 희망을 가졌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잘못을 용서하셨습니다. 베드로의 배반을 묻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오늘 성서 말씀을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비록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돌아오면 다시 생명을 얻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인일지라도 회개하고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하느님 사랑은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똑같이 햇볕을 주십니다. 그 사랑은 회개하는 사람의 몫입니다. 사람이 안고 사는 분노도 나쁘지만, 그것보다 남을 멸시하는 태도가 더 나쁩니다. 모든 이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 대한 미움과 분노, 멸시, 비난 등은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태도입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께서는 늘 나와 함께 계셨는데, 나는 주님이 힘들어하실 때, 주님께서 함께 기도하자고 하실 때, 어쩌면 늘 주님을 외면한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봅니다.
주님!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에게 크신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어, 건강한 모습으로 사목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서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