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주일에 한국의 모든 성당은 ‘일본 지진 피해’를 위한 2차 헌금을 하였습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많은 단체들이 일본의 피해 복구를 위해서 모금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배고픈 사람, 병든 사람, 헐벗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재난과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슬픔에 잠긴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고,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려고 합니다. 왜 우리가 그래야 할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측은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는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그런 상황이 되면 남들이 도와 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자선을 베풀 수 있습니다. 내 몸의 한 지체가 아프면 주저 없이 치료를 하듯이, 인류는 모두 한 몸을 이룬다는 생각으로 도움을 줄 수 도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어떤 마음으로 도움을 주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마태오 복음 25장에서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지금 가난한 사람, 헐벗은 사람, 병든 사람, 재난을 당한 사람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베푼 사랑이 바로 주님께 베푼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자선을 베풀어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반면에 가난하고, 병들고, 헐벗은 사람들에게 해주지 않은 것은 바로 주님을 외면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에서는 누가 참된 이웃인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강도를 당한 사람을 외면하고 돌아선 ‘랍비, 율법학자, 레위’는 참된 이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강도를 당한 사람을 여관에 데리고 가서 치료를 해주고,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주겠다고 말한 사마리아 사람이 참된 이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부자와 라자로’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라자로는 현실의 삶에서는 병들고 가난하게 살았지만 죽어서는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산다는 이야기입니다. 반대로 부자는 현실의 삶에서는 부유하게, 편안하게 살았지만 죽어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부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부자이면서 가난한 라자로를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본당에서는 사회사목 분과와 빈첸시오회를 통해서 매년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작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본당 예산의 10%정도의 비용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당에는 아직 갚아야 할 부채가 있기 때문에 약간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도와야 할 분들을 도와주지 않고, 먼저 부채를 갚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 있어야 할 이유를 망각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교회의 본질을 모르고 지내는 것과 같기 때문에 매년 이웃을 위한 찬조비를 책정하였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
재물의 십일조, 노력의 십일조, 봉사의 십일조, 재능의 십일조, 시간의 십일조를 생각합니다. 이것은 결코 내가 가진 것을 낭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결코 썩거나 상하지 않는 하늘나라의 곳간에 우리의 마음을 쌓아 놓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