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일

2011. 4. 3. 오전 4:59:32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4월의 첫째 주입니다. 주님의 수난과 십자가를 생각하며 사순시기를 잘 지내야 하겠습니다.
예전에 50년 동안 함께 살았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스피드 퀴즈’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할머니가 맞추어야 할 문제는 ‘천생연분’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할멈 우리들의 만남은 무엇이지?’ 그러자 할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웬수’ 그러자 할아버지가 말씀하십니다. ‘네 글자로 하면 멀까?’ 그러자 할머니가 말씀하십니다. ‘평생웬수’ 할아버지는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했지만 할머니는 웬수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평생 할머니 속을 썩여 드리던 할아버지가 목에 사래가 들려서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가 119를 불렀고, 병원에 도착했지만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운명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아직 약간의 기운이 남아서 할머니께 말씀하셨습니다. ‘나 아직 안 죽었어!’ 그러자 할머니가 이렇게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평생 말을 듣지 않더니, 의사 말도 듣지를 않네! 의사 선생님이 죽었다고 하잖아!’

일본은 지진과 쓰나미로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후쿠시마의 원전이 이번 지진의 영향으로 파손이 되었고, 방사능 유출은 일본뿐만 아니라, 이웃나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많은 나라들이 일본의 피해를 마음아파하고,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나라와 중국도 일본을 위해서 성금과 물자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일본 정부는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 반대되는 주장을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일본의 중학교 역사와 지리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 땅이고, 한국이 강제로 지배하고 있다고 가르치려하고 있습니다. 태평양 전쟁도 아시아를 위한 전쟁이었다고 하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 큰 상처를 주었던 식민 통치를 합리화하려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국내의 불안을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잠재우려는 태도입니다. 지구촌이 모두 상생과 협력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나친 국수주의와 민족주의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한다고 하겠습니다.

눈이 있지만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삐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잣대로 보려하기 때문에 현실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소경이 된 것은 조상의 탓도 아니고, 본인의 탓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위한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사람이 아픈 것도, 장애인이 되는 것도 모두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같은 사물을 보면서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랜 동안 앞을 보지 못한 소경이 눈을 뜬 것은 축하할 일입니다. 가족들에게도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바리사이파 인들은 소경이 눈을 뜬 것이 신학적으로 합당한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독화살의 비유와 같습니다. 사람이 독화살을 맞았으면 먼저 치료를 해야 합니다.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화살이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어떤 사람이 쏘았는지를 먼저 따집니다. 왜 화살을 쏘았는지를 생각하는 동안에 화살에 맞은 사람은 독이 온 몸에 퍼져서 죽을 수 있습니다.

오늘 성서 말씀을 묵상해봅니다.
“너희는 사람들의 외모와 능력, 사람들의 겉모습만 보지만, 야훼께서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보신다.” 마치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자신만의 城에 갇혀서, 다른 이들의 생각을 보지 못하고, 편견과 독단과 아집과 이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본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그런 나 자신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몸이 있어도 참된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그러기에 오늘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참으로 볼 수 있는 “心眼”을 요구하십니다. 참으로 들을 수 있는 “智慧”를 요구하십니다. 눈을 들어 세상을 봅니다. 참으로 보지 못하고, 참으로 듣지 못해서 눈과 귀가 있으면서도 그릇된 곳으로 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겉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여, 욕하고, 비난하고, 침을 뱉으며, 인격을 무시합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보는 사람은 보지 못하게 하고, 보지 못하는 사람은 보게 하려고 왔다.”진실을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거짓과 가식과 허영에서 벗어나 참된 진리를 보도록 요청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참된 세상을 보도록 인도하십니다.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세상을 보도록 인도하십니다. 희망과 평화 진실과 사랑이 한데 어울려, 참된 빛을 볼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십니다.

아름다운 꽃을 보기 전에, 저 땅 속에서 쉼 없이 양분과 물을 찾고 있는 뿌리를 볼 수 있다면 깨끗한 거리를 보기 전에, 새벽부터 일어나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을 볼 수 있다면 일등에게 찬사와 축하를 보내기 전에 꼴등에게 위로와 격려를 먼저 할 수 있다면 용서받기를 원하기 전에, 먼저 용서를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둠에서 벗어나 이미 빛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참회와 절제, 자선의 사순시기도 벌써 반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난 과연 무엇을 보고 있는지, 난 과연 무엇을 보기 싫어하는지 곰곰이 생각하면서 한 주간을 지냈으면 합니다.

댓글 1

  • 2011년 4월 3일 오후 2:24

    <폭풍의 눈>안에 있을 때에는...제가 폭풍속에 갇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하느님의 눈으로 스스로를 꾸준히 점검할 줄 아는 심안을 지니기 위해... 늘 하느님 곁 가까이에 있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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