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조선시대 양사언이라는 분은 아름다운 시조를 남겨 주었습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노라.”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사람이 한걸음씩 올라가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많은 목표들이 있습니다. ‘건강한 육체와 정신, 안정된 직업과 가정, 이웃과의 원만한 관계’와 같은 것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이것이 불가능한 목표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이것이 가능한 목표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꿈을 꾸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사다리는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오를 수 있는 도구입니다. 사다리를 놓을 때 중요한 것은 내가 오르고자 하는 곳에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엉뚱한 곳에 사다리를 놓으면 오르면 오를수록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되고 결국은 다시 내려와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올라야 할 산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악의 세력이 다른 것은 다 할 수 있지만 결코 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것도, 사람이 되어 오신 것도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둘째는 ‘기도’입니다. 사랑은 기도라는 샘에서 퍼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사랑이신 예수님과 관계를 맺을 때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랑은 곧 메말라 버리기 쉽습니다.
세 번째는 ‘겸손’입니다. 예수님께서 늘 말씀하신 것은 ‘섬김’입니다. 첫째가 되려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하라고 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경청’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먼저 상대방의 말을 경청합니다. 공감하면서 듣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기만 해도 많은 치유가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는 나아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아만은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고, 예언자 엘리사의 이야기를 경청했습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자신의 몸을 강물에 담갔습니다. 나아만은 나병이 나았습니다. 육체의 나병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어쩌면 더 쉽게 치유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의 나병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영혼의 나병은 좀처럼 치유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시기심, 분노, 욕심, 쾌락’의 나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좀처럼 치유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못했습니다. 잘못된 곳으로 사다리를 놓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나병을 치유하지 못하였습니다.
한주일의 시작입니다. 한걸음씩 사랑의 산, 기도의 산, 겸손의 산, 경청의 산으로 오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