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국 광저우에서 아시안 게임이 열리고 있습니다. 아시아는 인구가 42억이나 됩니다. 이는 전 세계 인구의 삼분의 이가 될 정도로 많습니다. 아시아는 세계 주요 종교의 발상지이기도 합니다. 눈부신 경제 발전으로 아시아는 국제무대에서도 당당하게 어깨를 겨루고 있습니다. 이번 아시안 게임을 통해서 아시아인들의 화합과 일치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전쟁과 폭력이 종식되고, 참된 평화와 사랑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스포츠는 공정한 게임이 되어야 합니다. 승리한 팀은 축하해 주고, 패배한 팀은 격려해 주는 것이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예전에 우리가 보는 것에도 몇 가지 등급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첫째는 肉眼입니다. 우리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으로 보는 것은 진실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두 번째는 知眼입니다. 지식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경제를 배우는 사람은 경제의 눈으로, 법을 배우는 사람은 법의 눈으로, 과학을 배우는 사람은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이는 각 부분은 정확하게 볼 수 있지만 전체를 바라보기에는 부족합니다.
세 번째는 心眼입니다. 마음의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마음의 눈으로 자녀를 바라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마음의 눈으로 상대방을 바라봅니다. 마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상대방의 허물과 잘못을 이해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중요하지만, 진리를 보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네 번째는 慧眼입니다. 이것은 지혜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오랜 수행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언자들은 선과 악을 구별하는 눈을 가졌습니다. 불의와 고통을 통해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리코를 걷고 계셨습니다. 눈이 먼 소경은 예수님께 간절히 청했습니다. ‘주님 보게 해 주십시오.’ 주님께서는 대답하셨습니다. ‘다시 보아라.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예리코의 소경은 비록 육체의 눈은 볼 수 없었지만 따뜻한 사람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있었습니다. 나자렛의 예수님께서 새로운 길을 보여 주신다는 것을 아는 지식의 눈이 있었습니다. 이제 예리코의 소경은 육체의 눈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을 알 수 있는 지혜의 눈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응송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제가 좋아하는 글입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는 것은 예전에 보는 것과는 다릅니다.’ 지식의 눈으로, 마음의 눈으로, 지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하는 일 마다 다 잘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