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1주간 토요일

2010. 11. 6. 오전 6:15:49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신부님들이 임기를 마치고 다른 곳으로 갈 때가 있습니다. 신자 숫자가 많고, 교무금과 헌금이 많은 본당으로 갈 때가 있습니다. 보좌 신부님도 계시고, 수녀님도 계시고, 강남의 큰 성당으로 갈 때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성당의 부채가 많고, 신자 숫자도 적고, 교무금과 헌금도 적은 본당으로 갈 때가 있습니다. 당연히 보좌신부님도 안 계시고, 수녀님도 없으신 본당으로 갈 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무런 시설이 없는 신설본당으로 갈 때도 있습니다.

신자분들은 가끔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신부님 영전하셨습니다.’ 혹은 ‘신부님 고생하시겠네요.’ 어떤 기준으로 신자분들이 말씀을 하시는지 생각합니다. 본당의 크기, 신자의 숫자, 교무금 헌금의 크기와 같은 것들이 기준이 되는 것일 것입니다. 사제인 저도 이왕이면 모든 시설이 잘 갖추어진 곳, 부채가 없는 곳, 보좌 신부님과 수녀님이 계신 곳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인들의 공동체인 우리 안에도 어느덧 세상의 잣대가 들어와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정해야 하는 원칙과 기준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뜻’입니다.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부귀보다 가난함을 택할 수도 있고, 장수보다 단명함을 택할 수도 있고, 건강보다 질병을 택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소유했는가를 가지고 행복의 기준을 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재물, 권세, 명예’로 순위가 매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떤 현자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을에 있는 수녀원에 ‘성인’이 나타났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현자는 성인을 만나고 싶어서 수녀원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성인을 만나고 싶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원장 수녀님이 ‘저를 보세요.’라고 했습니다. 현자는 아니라고 답을 했습니다. 수련장 수녀님도, 전례 담당 수녀님도 ‘저를 보세요.’라고 했지만 아니라고 답을 했습니다. 나중에 부엌에서 잡다한 일을 하는 아직 정식 수녀도 아닌 자매를 불러왔습니다. 그러자 현자는 그 자매가 바로 성인이라고 답을 하였습니다. 원장 수녀는 밤새 고민을 했습니다. 하느님과 가까운 자리에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바로 옆에 있던 성인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아침 부엌으로 찾아가 자매에게 수녀원을 맡아 달라고 청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부엌에 있던 자매는 사라지고 없었다고 합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주어진 현실에 만족할 줄 아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댓글 2

  • 2010년 11월 6일 오후 6:38

    하느님의 뜻임에 오늘도 내일도 잊지 않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았으면 차암 좋겟습니다.~~

  • 2010년 11월 6일 오후 10:2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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