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울 지역 지도자 학교(정월기 신부님 강의 요약)

2010. 6. 17. 오전 6:29:54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화요일에 있었던 ‘서서울 지역 지도자 학교’ 강의 내용을 요약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지난 그리스와의 월드컵 조 예선에서 박지성 선수는 환상적인 골을 넣었습니다. 그러나 박지성 선수는 90분 경기에 9번 넘어졌습니다. 10분에 한번은 넘어졌고, 하지만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골을 넣었습니다. 넘어지지 않는 축구선수는 거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시 일어서는 것이고, 앞으로 달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좌절과 슬픔, 고통과 외로움의 벽을 만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성숙한 신앙인은 그 장벽을 딛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로 다가서는 것입니다.

호주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닉 부이치치’였습니다. 아이의 부모는 아이가 정상이라는 말을 듣고 출산을 했습니다. 그런데 태어난 아이는 안타깝게도 두 팔과 두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었습니다. 부모는 절망했고, 걱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어서 아이를 사랑하고, 잘 키우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 결심도 아이를 볼 때면 다시 흔들렸지만 아이를 정성껏 키웠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학교에 가서 너무나 큰 차별을 받았고, 자신이 부모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에 ‘자살’을 결심합니다. 자살의 순간에 부모님의 사랑이 떠올랐고, 다시금 삶의 의지를 키웠습니다.

소년은 두 가지 이유로 삶의 의지를 키웠습니다. 첫 번째는 장애인인 자신을 지극한 정성으로 돌보고 사랑하는 부모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요한복음 9장의 말씀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을 보고 제자들이 질문을 합니다. 주님! 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것은 본인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본인의 죄도 아니고, 부모의 죄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기 위해서입니다.’ 소년은 예수님의 이 말씀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살기로 결심을 합니다. 장애는 불편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장애는 죄가 아닙니다. 청년이 된 소년은 넘어졌을 때 백번이상 일어서려고 했고, 드디어 전화기에 머리를 박고 일어서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우리가 일어서려고 노력하면 결코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일어서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 문제일 뿐입니다. 지금은 장애의 몸을 지녔지만 전 세계를 돌면서 강연을 합니다. 그리고 300만 명이 넘는 사람을 신앙애로 인도하였습니다. ‘순간을 사랑하며’라는 책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과거 때문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아직 오지 않는 미래 때문에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현재(Present)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느님이 주신 최상의 선물(Present)입니다.

우리는 현대사회의 흐름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현대사회의 특징은 크게 4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세계화’입니다. 세계화는 거대화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큰 기업은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게 됩니다. 반면에 작은 기업이나 가게는 점차 쇠퇴해 갑니다. 세계화는 힘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더 큰 이익을 제공하지만 힘이 없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작은 기회마저 빼앗아 갈 수 있는 흐름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물질주의’입니다. 모든 가치의 척도는 ‘돈’이 되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면 무엇인가를 사야 할 것만 같습니다. 소유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합니다. 예수님도 이런 유혹을 받았습니다. 돌을 빵으로 만들어 보라는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재물에 대한 유혹을 이겨내셨습니다. 말씀이 빵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폭력’입니다. 폭력은 지배구조를 양산합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힘을 행사하고, 정상인은 장애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대기업은 작은 기업에 힘을 사용합니다. 강한 나라는 약한 나라를 침략합니다. 이와 같은 폭력은 점점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지만 가정에서도 이와 같은 폭력이 존재합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영화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지배구조가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순종을 강요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랑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마리아 선생님은 아이들을 변화시키고, 명령과 복종을 강요하던 아버지를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할 수 있도록 변화시켰습니다.
네 번째는 ‘개인주의’입니다.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 현실입니다. 나눔과 친교는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익명의 그늘에 숨어서 지내는 것이 편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개인주의는 하느님이 원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함께 하길 원하셨고,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셨습니다. 가정이 있지만 대화가 사라지고, 하숙집과 같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에 열려있어야 하고, 세상이 곧 교회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세상의 흐름에 교회의 시각으로 예수님의 방법으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나타난 새로운 교회상이며 ‘사목헌장’은 현대인들을 위한 교회의 목소리입니다.

세계화의 흐름을 보완하는 것은 지역화와 소규모화입니다. 정부는 지방자치 단체의 권한을 강화하고, 지방자치 단체가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합니다. 이것은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일입니다. 본당도 그렇습니다. 본당 신부가 모든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본당은 구역과 반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구역장, 반장은 예수님을 따르는 새로운 사목자가 되어서 가난한 이, 소외된 이, 아픈 이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물질주의의 병폐를 보완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배려입니다. 교회 내에 스며든 물질주의의 요소들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 건축에 드는 비용, 행사에 드는 비용도 필요하지만 교회는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끊임없이 자신의 것을 내어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너희가 나누어 주라고 하였습니다. 너희 중에 첫째가 되고자 하는 이는 꼴찌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배려가 우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폭력에 대해서는 사랑으로 감싸야 합니다. 아버지가 폭력을 사용하는 가정을 조사해 보았다고 합니다. 자녀들은 힘이 센 아버지를 따르게 되었고, 그렇게 성장한 자녀들도 같은 폭력을 행사하였습니다. 4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3명이 암이 걸렸고, 두 명은 사망했다고 합니다. 폭력은 본인도 힘들게 하고, 주변 사람들도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내고, 사랑은 모든 것을 감싸주며, 사랑은 상처를 치유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능력을 보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들 또한 우리가 만나는 사람을 조건을 보고 사랑하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 안에서 가지는 영적인 리더십입니다.

댓글 2

  • 2010년 6월 17일 오전 9:50

    아~~~멘 ,,

  • 2010년 6월 18일 오후 1:2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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