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1주간 월요일

2010. 6. 14. 오전 4:17:07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민족은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심청전, 춘향전, 흥부전’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심청전은 아빠의 눈을 뜨게 하는 심청의 효심을 이야기합니다. 춘향전은 신분의 벽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입니다.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라 하겠습니다. 흥부전은 가난하지만 착한 흥부와 부자이면서도 욕심이 가득한 놀부의 이야기입니다. 가난하지만 착한 흥부는 다리를 다친 제비를 정성껏 치료해주고, 나중에 강남에서 돌아온 제비가 준 박씨를 심어 부자가 됩니다. 놀부는 더 큰 부자가 되고 싶어서 일부러 제비의 다리를 부러트리고, 고쳐줍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놀부는 박씨를 심었고, 박씨에서는 무서운 것들이 나와서 놀부를 벌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오래전부터 들어온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아직도 주변에서 흥부와 놀부를 만날 수 있습니다. 2년 전에 있었던 ‘용사참사’의 이야기는 현대판 ‘흥부와 놀부’이야기와 비슷합니다. 개발의 과정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개발의 과정에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작은 보상금으로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세종시의 문제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순박한 시골의 농민들은 자신들의 고향이 새로운 행정수도가 된다고 하기에 땅을 내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경제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행정수도를 포기하고, 혁신도시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은 사라지고, 경제발전이라는 논리가 기꺼이 정부를 위해서 땅을 내어준 농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살리기’도 필요하면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강은, 생명은 우리만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그 터전위에서 삶을 살아왔고, 우리의 후손들도 신세를 져야할 소중한 삶의 터전입니다. 그러기에 강을 정비하기 전에 그 속에 살고 있는 생명들을 보호해야 하고, 신중한 환경평가를 해야 합니다. 우리만의 강이 아니고, 우리만이 소유할 수 있는 생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두 개발하고, 우리가 그 이익을 모두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늦더라도 모든 생명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의 후손들도 일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먼저 강 하나를 신중하게 실행하면, 국민들도 그 결과를 보고 다른 강들의 정비와 개발도 찬성할 것입니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밀어붙이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지만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대화와 소통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아합왕과 나봇의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아합왕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나봇의 포도밭을 사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나봇은 조상들이 물려준 포도밭을 팔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아합왕의 부인인 이자벨은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서 편법을 사용했고, 밀어붙였습니다. 그들은 원했던 포도밭을 얻었고, 나봇은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 이야기도 먼 옛날 구약성서에만 나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도 계속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은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있다는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략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결국 이라크에는 대량 살상 무기가 없었지만 미국은 자신들의 침략행위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사과를 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이런 폭력을 전에도 행한 적이 있습니다. ‘통킹 만 사건’이 그렇습니다. 미국은 베트남의 잠수정이 미국의 군함을 공격했다고 발표를 했고, 베트남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엄청난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한국도 월남에 군인을 파병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통킹 만’사건은 미국의 자작극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물론 미국은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길을 제시합니다. 좀 멀고 느리게 느껴지지만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길입니다.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예전에 고려 말 ‘나옹선사’가 했던 말과 비슷합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월요일 아침입니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달라는 자에게 줄 수 있으면, 꾸려는 자를 물리지치 않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3

  • 2010년 6월 14일 오전 11:50

    현세의 아합왕도 역시 자신의 탐욕을 모릅니다. 사과도 없습니다. 지치고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는 말씀~ 고맙습니다.

  • 2010년 6월 14일 오후 4:33

    아멘!

  • 2010년 6월 15일 오후 1:06

    글을 읽으면~ 꼬옥 신부님이 강론하시던 말씀의 높낮이대로 글을 읽게 되네요.ㅎㅎㅎ.~~ 꼬옥 강론을 듣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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