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주일에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5시간 동안 ‘본당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가 카나 홀에서 있었습니다. 강의 방식은 ‘행위, 전례, 정리’라는 내용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주입식 강의는 지루하고, 나중에 잊어버리기 쉬운 반면에 수녀님께서 해 주시는 강의는 먼저 행위가 있고, 그 행위에 전례적인 의미를 담아내고, 정리를 해 주시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오래 남는다고 하였습니다. 강의는 ‘공동체 활성화’와 ‘새로운 복음 나누기’로 이루어 졌습니다. 오늘은 제1강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00여명의 교우들은 처음에는 둘씩 짝을 지어서 대화를 하였습니다. 공동체의 시작입니다. 다음에는 4명씩 짝을 지어서 대화를 하였습니다. 나의 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둘이 있을 때 잘 듣지 못하였다면 다른 사람에게 소개를 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다음에는 8명이 짝을 이루었습니다. 8명이 한 조가 되어서 대화를 나누었고, 간단하지만 아름다운 전례를 함께 하였습니다. 전례에는 우리가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 하지 못하였던 것들을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컵에 물을 담는 행위였습니다. 물을 담으면서 못 다한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그렇게 각자가 컵에 물을 담았고, 그 물들은 커다란 유리그릇에 담았습니다. 공동체 모두가 못 다한 이야기들을 함께 섞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젊으신 분이 아름다운 장미를 물그릇에 담았습니다. 의미는 인생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은 가장 연장자께서 돌을 유리그릇에 넣었습니다. 돌은 인생에서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들을 상징하였습니다. 돌이 유리에 부딪쳐서 나는 소리는 함께한 이들에게 작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다음에 사제는 유리 물그릇에 초를 담았습니다. 우리의 공동체에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기원하는 의미였습니다. 신앙의 공동체에 주님이 현존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수녀님께서는 우리의 행위와 전례에 대해서 정리를 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행위에 담겨있는 신학적인 의미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공동체란 무엇인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다가서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외된 사람, 죄인, 이방인, 병자들에게 다가섰습니다. 공동체는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서면서 시작해야 합니다. 본당에서도 새로 이사 오신 분, 이제 막 세례를 받으신 분, 냉담 하는 분, 환자들, 가난한 분들, 소외되는 분들에게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까이 다가선 방법입니다. 친한 사람끼리, 주고받을 것이 있는 사람끼리 가까이 다가서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잘 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들어주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잘 들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면서 나는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려 하지 않습니다. 아빠는 엄마와 자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는 자신의 뜻을 따르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엄마도 자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는 엄마의 뜻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늘 들었습니다. 부족한 제자들의 이야기도 끝까지 들어 주셨습니다. 일방적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쉬울 수 있지만 그런 관계에서는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상담을 할 때 돈을 주면서 합니다. 그러면 상담을 하는 분은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특별한 처방을 내리지 않아도 우리의 이야기만 들어 주어도 우리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화를 냈다면 나에게 화가 난 경우도 있겠지만 내가 친하기 때문에 내가 말을 들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때 잘 들어만 주어도 상대방은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아이들의 의견도 잘 들어주고 존중해 주는 문화입니다. 우리는 유교적인 전통이 있기 때문에 ‘장유유서’라는 생각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듣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말하고 따르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복음의 방식이 아니고, 공동체를 이루는 방식이 아닙니다. 공동체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데서 발전합니다.
세 번째는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엄마라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상처를 많이 준 사람도 엄마라고 합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적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나는 분들은 모두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나 역시 하느님의 귀한 선물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소중한 이웃입니다. 예전에는 남자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남자들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기죽지 말고, 힘차게 살아야 합니다. 요즘은 여성들도 태어나는 순간부터 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여성들도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강남의 어느 부유한 집의 자녀이야기입니다. 아주 잘 살았고, 부모님도 모두 의사였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성적이 조금 떨어졌습니다. 형제는 자장면을 시켜서 먹고 있었습니다. 성적표를 보신 아버지는 두 형제의 머리에 자장면을 부었습니다. 이런 성적이라면 자장면을 먹을 자격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린 날, 두 형제에게 그날의 사건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공부를 못하면 자장면을 먹을 자격도 없다는 것이 너무나 슬펐습니다. 형은 그날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정신병원 신세를 졌습니다. 동생도 어렵게 대학을 나왔지만 아직도 아버지 앞에만 서면 너무나 작아지는 모습을 봅니다. 만일 아버지가 비록 공부를 못한다고 해도 아들들을 귀한 마음으로 대접했다면 많은 것들이 변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위와 능력을 보고 우리를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공동체에서 우리는 서로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네 번째는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에게 어떤 사람이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할 것 같은지 설문조사를 하였습니다. ‘김두환, 최불암, 손석희, 안성기, 박영규’와 같은 분들 중에서 설문조사를 하였습니다. 예전에는 ‘김두환’과 같은 분이 항상 1위였다고 합니다. 탁월한 능력이 있었고, 카리스마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안성기’와 같은 분들 1위로 선정한다고 합니다. 이유는 부드러우면서도 책임감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본당의 일도 그렇습니다. 특정한 사람 몇 명이 본당의 많은 일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 가지씩 일을 맡아서 하는 것이 공동체를 위해서는 바람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자서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지만 제자들을 뽑으셨고, 제자들에게 일을 맡겨 주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믿지 못하시고, 일을 함께 하지 않으셨다면 오늘 우리 교회는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본당의 지도자는 너무 바쁘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참여를 유도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는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결혼을 하는 젊은이들은 좋아서 만났지만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제 서로를 위해서 조금씩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남편의 편지를 소개합니다. 나는 종달새 형이라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편입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사람은 게으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올빼미 형입니다. 늦게 잠을 자고 늦게 일어납니다. 나는 물을 마시면 컵을 씻어서 제 자리에 놓아두어야 합니다. 아내는 컵을 다 꺼내 먹은 다음에 한꺼번에 씻으려 합니다. 그러니 힘이 들기 마련입니다. 나는 약속시간을 잘 지키는 편입니다. 아내는 약속시간이 다 되는데 화장을 하려합니다. 화장품의 뚜껑은 모두 열려있습니다. 나는 그런 아내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성서말씀을 통해서 아내에게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 수의와 아마포가 잘 정돈되었다고 성서에 나와 있다. 그러니 신앙인은 정리정돈을 잘해야 한다. 이것이 주님께서 부활하신 첫 번째 가르침이다. 그러면서 기도를 하는데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느껴졌다. ‘야! 이놈아. 정리정돈 잘하는 네가 내 아내를 위해서 그렇게 하라는 뜻이다.’ 남편은 그 음성을 듣고 깨달았습니다. 다음부터 아내를 위해서 정리정돈을 해 주었습니다. 늘 야단치고, 잔소리 할 때는 변하지 않았던 아내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컵도 잘 씻어 놓고, 화장품 뚜껑도 너무나 세게 닫아서 내가 열어 주어야 합니다. 내가 받은 은사는 나 혼자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려는 남편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편지입니다. 꽃밭에는 여러 종류의 꽃들이 있습니다. 분명 향기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지만 서로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꽃들이 아름다운 꽃밭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서로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소공동체와 단체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성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도 성사입니다. 소공동체는 작은 단위의 교회입니다. 따라서 소공동체도 성사입니다. 나무가 교회라면 뿌리는 본당입니다. 잔뿌리는 소공동체입니다. 줄기는 교구입니다. 나무 전체는 교회입니다. 잔뿌리가 상처를 입고 기능을 하지 못하면 나무는 시들게 됩니다. 소공동체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소공동체를 돌보고, 함께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단체는 은사입니다. 성사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은사를 받았습니다. 은사는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성사는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단체 활동을 잘 하면서 소공동체를 등한시 하면 안 됩니다. 소공동체는 밭과 같기 때문입니다. 밭이 메마르고 삭막해지면 열매인 은사가 풍성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은사인 단체는 학교의 취미활동과 비슷합니다. 좋기 때문에 하지만 못해도 그만입니다. 성사인 소공동체는 학교와 같습니다. 좋든 싫든 꼭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