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상당히 긴 이름의 대축일입니다. 김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정 하상 바오로 그리고 동료 순교자 대축일이니까요. 김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한국인 최초의 사제였습니다. 최초로 외국에 가서 서양의 학문을 배웠고, 한국인 최초로 서양의 언어인 라틴어, 불어를 배웠습니다. 사제 생활 1년 만에 순교로 목숨을 바쳤습니다.
정 하상 바오로 성인은 순교자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상재상서’라는 교회를 위한 글을 남겼고, 성직자 영입을 위해서 북경을 9번이나 왕래했습니다. 그의 노력으로 조선교회는 교황청으로부터 교구로 인정을 받았고, 성직자를 영입할 수 있었습니다. 정하상 바오로 성인도 45세의 나이로 순교하였습니다. 동료 순교자 101명도 모두 신앙을 지키며 하느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 순교했습니다. 우리교회는 바로 이런 순교자들의 피와 땀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특별히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순교라는 말은 ‘증거’라는 라틴말의 번역입니다. 목숨을 바쳐서 ‘증거’하는 것도 순교이고, 재산을 나누어 ‘증거’하는 것도 순교이고, 봉사하며 신앙을 ‘증거’하는 것도 순교입니다. 며칠 전에 ‘Never Ending Story'라는 프로를 보았습니다. 가수 김 장훈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는 가수로 벌어들인 수익금의 대부분을 기부금으로 내어 놓았습니다. 광고모델로 얻은 수익금은 전액 사회에 환원을 하였습니다. 40이 넘은 나이에 결혼도 하지 않은 그는 보증금 5000만 원짜리 월세를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겨울 태안에 기름 유출사고가 있었을 때, 2달 동안 그의 팬클럽 회원들과 함께 기름제거를 위한 봉사활동을 하였습니다. 봉사활동기간에 사용된 금액은 전액 본인이 부담하였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동료들을 위한 자리는 빠지지 않고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미국의 뉴욕타임지에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광고를 냈을 때, 광고비를 기부하기도 하였습니다. 김 장훈이 지금까지 10년 동안 기부한 금액은 약 45억 원으로 태안 복구를 위해 5억을 쾌척하고 카이스트를 방문해 학교 발전 기금으로 5천만 원을 내놓는 등 매년 평균 4억 원 이상을 기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수 김 장훈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왜 본인을 위해서 돈을 모으지 않고, 전액 사회를 위해서 기부합니까?’ 그러면 김 장훈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주는 것이 행복하니까요.’ 가수 김 장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는 이 시대에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순교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젊은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잘 걷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혼자서는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그런 젊은이입니다. 그 친구에게는 그저 걷는 것만도, 그저 말하는 것만도, 그저 음식을 손으로 먹을 수 있는 것만도 엄청난 고통과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저는 그 친구의 책상에서 정말 힘들게 쓴 글을 볼 수 있었고 그 친구의 글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밤하늘이 있기에 별들은 아름답습니다.”
이 세상은
별들이 많은
은하수 같은 것입니다.
별들이 많기에
밤하늘이 아름다울 수 있지만
그 뒤에는
우주라는
어두운 하늘이 있습니다.
별들이 밤하늘이 있기에
아름다운 것처럼
이 세상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기에
그것만으로도
이 세상은 아름다울 수 있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고 있는 김 대건 안드레아, 정 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은 바로 어두운 밤하늘에 아름답게 빛나는 신앙의 별들입니다. 15세의 어린 나이로 이역만리 머나먼 땅으로 유학을 떠난 김 대건 신부님, 신부님을 모시기 위해 추운 겨울에 북경을 9번이나 왕복한 정 하상 바오로, 장원급제의 영광과 명예를 포기하고 기꺼이 고생길을 자처한 황사영, 그밖에 이름 모를 많은 순교자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어둠에 쌓인 우리 교회에 희망을 주었고 빛을 주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 8장에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와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혹 위험이나 칼입니까?” 사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환난, 역경, 박해, 굶주림, 헐벗음, 위험, 칼 때문에 신앙을 지키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시련과 고통 죽음까지도 각오하는 결단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를 그리스도와의 사랑에서 떼어놓는 것들은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나의 욕심이, 나의 게으름이, 나의 자존심이, 나의 이기심이, 나의 교만이 그리스도와의 사랑에서 나 자신을 떼어놓은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천국에서 순교자들이 보시면 참으로 가슴 아픈 일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너무 쉽게 보이곤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순교자들처럼 목숨을 바쳐야 될 일은 별로 없습니다. 재산과 가족, 부와 명예를 포기하는 일도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순교자들이 지켜온 신앙을 보존하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의 봉사와 나눔, 우리의 사랑과 희생으로 순교자들의 신앙을 지켜나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