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3주간 화요일

2008. 9. 9. 오전 10:11:52

글자

 



안녕하십니까!
자동차는 바퀴가 4개입니다. 그런데 모든 자동차는 트렁크에 여분의 바퀴를 하나씩 더 가지고 다닙니다. 거의 쓸 일이 없는 그 여분의 바퀴는 꼭 필요할 때 긴요하게 쓰입니다. 저도 여분의 바퀴를 3번 정도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병자 방문을 다녀오다가, 바퀴에 큰 못이 박혀서 바람이 빠진 적이 있습니다. 그때 트렁크에 있는 여분의 바퀴를 사용했습니다. 또 한 번은 본당 청년들과 제부도에 다녀오다가 비오는 길에 바퀴가 찢어져서 여분의 바퀴를 사용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용한 것은 고속도로에서 달리다가 바퀴가 완전히 찢어져서 역시 트렁크의 바퀴를 사용했습니다. 세 번 모두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럴 일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럴 일이 거의 없어도, 본의 아니게 그럴 일이 생기면 트렁크의 바퀴는 아주 요긴하게 사용됩니다. 트렁크 안에 있는 바퀴라고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을 그 때 알았습니다.

어제 평화방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오늘 방송을 해야 하는 신부님이 갑자기 못 나오게 되셨다는 겁니다. 생각나는 신부님이 저밖에 없다고 오실 수 있겠느냐고 부탁을 하십니다. 순간 저는 트렁크에 있던 여분의 바퀴가 생각이 났고, 기꺼이 도와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주인공이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듯이 때로 조연도 필요한 것이, 때로 여분의 바퀴가 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선택을 받아 이집트 땅을 떠났지만,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만난 것은 그 뒤로도 1500년이 더 지난 뒤였습니다. 우리의 짧은 생에서 쨍하고 빛을 보지 못하였다고 해도 그리 서운 할 것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직책, 이나 자리’를 보고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실 때, 그들의 신분이나, 학력, 능력을 보고 부르시지는 않았습니다. 단 하나, 주님께 대한 신뢰와 따름이었습니다. 오늘 제 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 대한 ‘신뢰와 따름’보다는 세상의 기준과 세상의 논리로 형제들을 서로 비난 하는 것을 걱정합니다. 좀 더 기다리지 못하고, 좀 더 이해하지 못하고, 좀 더 감싸주지 못하는 교우들을 걱정합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해져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지난주일 교리 시간에 한 자매님은 미국 출장 갔다가 오는 길에 바로 성당으로 오셔서 교리를 배웠습니다. 공항에서 아들에게 빨리 성당으로 가자고 하니까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엄마가 이렇게 변하실 줄 몰랐습니다.’ 또 다른 예비자는 한 번도 교리에 빠지지 않겠다고 하시더군요. 몹시 아파서 한번 교리에 빠졌는데 그것을 너무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간절한 것을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참 많이 기다려 주십니다. 다시 돌아와도 야단치시거나, 나무라지 않으시고 받아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우리도 우리들의 형제를 너그럽게 받아주고, 기다려 달라는 가르침이라 생각합니다.

 

댓글 4

  • 2008년 9월 9일 오후 9:51

    아멘!

  • 2008년 9월 10일 오전 4:45

    아멘

  • 2008년 9월 10일 오전 11:07

    아멘..

  • 2008년 9월 10일 오후 3:04

    군중들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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