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음식을 먹어야 힘을 얻고 살 수 있습니다. 보통은 하루에 3번 식사를 합니다. 텔레비전에서도 저녁 6시 무렵이면 어김없이 맛있는 음식에 대한 프로그램을 방영합니다. 요즘은 전어가 나오는 철이라서 전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식당도 가보면 텔레비전에 나온 집이라는 선전을 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먹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배가 고프면 흥미를 잃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림의 떡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먹어봐야 안다는 뜻입니다. 우리 동네만 해도 가장 많은 것은 음식점입니다. 산북도로에 하루가 멀다 하고 생기는 것도 식당입니다. 하긴 저도 어제 아산까지 가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맛있는 집이니까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먹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배설’입니다. 제대로 배설을 하지 못하면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없습니다. 물도 고요 있으면 상하는 것처럼, 우리가 먹는 음식도 배설을 통해서 나오지 않으면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하늘의 구름도 때가 되면 비가 되어 땅으로 내려옵니다. 화려한 꽃도 때가 되면 씨앗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장자도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숲속의 새는 둥지를 틀 때 나뭇가지 하나면 족하다. 다람쥐는 샘물에서 물을 마시면 주저 없이 왔던 길로 돌아간다.’ 석가모니도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욕심은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것 같아서 부리면 부릴수록 더욱 목이 마르다.’
요즘 우리경제가 어렵다고 합니다. 정부에서는 어렵기는 하지만 이겨낼 거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경제지표들은 어려운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경제는 언제나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성장하기를 원하면서 지난 500년간 자연을 개발했습니다. 하지만 무한할 것 같은 자원은 조금씩 바닥이 나기 시작합니다. 무리한 개발은 환경을 파괴하였고, 많은 동식물들을 멸종하게 하였습니다. 개발과 발전, 성장의 패러다임은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발전하는 것은 행복의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 아무도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자기가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지혜가 하느님께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지혜는 발전과 성장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화려하고 멋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어도 ‘배설’을 해야만 건강하듯이 발전과 성장 또한 이웃에 대한 배려와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십니다. “나는 이제 여러분을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행복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물이 터지도록 많은 고기를 잡은 것이 행복의 기준이 아니라고 합니다. 묶인 이를 풀어주고, 갇힌 이에게 자유를 주고, 눈먼 이는 보게 하는 것이 행복의 기준이라고 하십니다. 바로 그런 일을 함께하고자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내가 가지려고 노력했던 그만큼, 내가 받으려고 했던 그만큼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것, 내가 받은 것을 줄 줄 아는 것 이것이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