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늦은 시간, 동창신부님들이 전화를 하였습니다. 몇몇 친구들이 함께 있으니 오라는 것입니다. 시간은 늦었어도, 한동안 보지 못한 친구들이 있기에 잠깐 다녀왔습니다. 사제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면 교회이야기를 많이 하게 됩니다. 좋은 이야기도 하지만, 더러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어떤 신부님이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 어떤 신부님은 아프다는 이야기, 어떤 신부님은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특히 지난주에는 교구 인사이동이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지구는 14지구입니다. 우리 지구도 2분의 신부님께서 다른 곳으로 가시고, 2분의 신부님이 새로 오십니다. 한분은 저보다 선배이고, 다른 한분은 저보다 후배입니다. 선배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 하지 않는데, 후배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본당 신부인 경우 몇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보좌신부님이 있는 곳인지, 수녀님은 있는 곳인지, 신설 본당인지, 성당의 부채가 있는 곳인지, 더러는 지역이 어떤 곳인지를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보시면 아마도 야단치실 그런 기준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야단치십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따른다고 하지만 이미 그들의 생각과 그들의 판단기준은 하느님의 뜻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영광과 자신들의 명예, 자신들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이 사랑해야 하는지, 얼마나 많이 봉사해야 하는지, 얼마나 많이 희생해야 하는지, 얼마나 많이 자신의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하는지를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삶의 기준이 된다면 인사이동을 보고 판단하는 기준도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오늘 제1독서는 데살로니카 2서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 때문에 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크게 자라나고 저마다 서로에게 베푸는 여러분 모두의 사랑이 더욱더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이 그 모든 박해와 환난을 겪으면서도 보여 준 인내와 믿음 때문에, 하느님의 여러 교회에서 여러분을 자랑합니다. 이는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의 징표로, 여러분이 하느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은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기준은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본당의 크기와 본당의 신자, 본당의 재정은 결코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한 주일을 시작하면서, 먼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