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거룩한 변모축일

2008. 8. 6. 오전 9: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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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오늘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입니다. ‘암행어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행색이 초라하고, 말도 어눌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주머니 속에 감쳐둔 ‘마패’를 꺼내 이렇게 외칩니다. ‘암행어사 출두요!’ 그러면 거만하던 사또가 순식간에 꼬리를 내리고 마루로 내려와 고개를 조아리게 됩니다.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변장을 했지만 사실 ‘마패’를 가진 사람은 왕의 명령을 받고 지방의 관리들의 부정과 부패를 감독하는 어사였던 것입니다. 어릴 때, 암행어사에 대한 드라마를 보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시원했었습니다. 서양에는 이와 비슷한 영화가 있는데 ‘슈퍼맨’입니다. 평소에는 뿔테 안경을 쓰고 평범하게 지내지만 악의 세력이 나타나면 슈퍼맨 복장을 하고 나타나서 악을 응징하고,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해 줍니다. 암행어사나, 슈퍼맨의 공통점은 평소에는 그들의 힘과 능력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마지막 순간에, 결정적인 순간에 문제를 해결합니다.
비록 허름한 옷에 자신의 모습을 감추지만 암행어사는 엄격한 국가의 시험을 통과하였고, 왕으로부터 임명을 받았으며, 자신을 도와줄 군졸들을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입니다. 슈퍼맨도 먼 행성에서 왔지만 그의 몸에 엄청난 힘을 감추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암행어사보다 슈퍼맨보다 더 엄청난 사건입니다. 세상의 왕이 아닌, 다른 행성의 힘이 아닌,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느님께로부터 사랑받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예수님과 암행어사 슈퍼맨이 공통점이 있다면 그 힘을 감추신다는 것이고, 편안한 삶이 아니라 위험과 고통을 감수하는 세상 속에서의 삶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거룩한 변모는 세 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산에 오르는 단계입니다. 예수께서는 세 제자만 데리고 산에 오르십니다. 산에 오름은 흔히 우리 영적 등정을 암시합니다. 산은 하느님을 체험하는 곳을 상징합니다. 모세도 엘리야도 결정적 순간에 산으로 오릅니다. 예수님 역시 그렇습니다. 구약에서 호렙 산, 시나이 산은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 신비체험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나타납니다. 타볼 산 역시 주님 현존을 체험하는 곳, 그분의 빛을 보고 그 빛을 받는 곳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만나기를 원하는 한 우리 모두 산에 오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 다음은 체험의 단계입니다.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산에 오르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새하얗게 모습이 변하십니다. 제자들은 그분에게서 찬란한 광채가 나오는 것을 목격합니다. 베드로가 얼떨결에 예수께 제안합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약간 엉뚱한 대답이 주어집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이 구절은 타볼 산 체험의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이 지향하는 바는 결국 하느님 아들의 말씀을 듣는 것임을 알려 줍니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좋은 곳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산을 내려오는 단계입니다. 산을 내려옴은 현실로 되돌아옴을 뜻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진정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고 그분과의 일치를 이룬 사람은 현실 안에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게 됩니다. 물론 우리 희망과 목표는 타볼 산 체험, 신비체험이지만, 그것은 다시 현실 속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우리의 타볼 산은 어디입니까? 수도원이나 성당 혹은 성지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역시 베드로처럼 “여기서 평생 머물고 싶다.”는 유혹에 빠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타볼 산은 우리 일상 안에, 현실 안에, 시련과 고통 속에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발견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단조롭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때론 지치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또 현실의 온갖 걱정거리가 우리를 짓누르고 걸려 넘어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일상을 벗어나 뭔가 특별한 체험을 찾으려하는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변모 사건, 제자들의 타볼 산 체험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바로 구체적 현실에 발을 딛고 일상 안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타볼 산 체험은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이 선물은 우리가 지치고 넘어질 때,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우리에게 활력과 용기를 불어넣어줄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거룩하게 변모하신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내려오시어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신앙은 높은 곳에서 사슴처럼 지내는 것일 수도 있지만, 거친 세상에서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십자가가 우리가 보여 줄 수 있는 ‘신앙의 마패’입니다.

댓글 3

  • 2008년 8월 6일 오후 7:02

    좋은말씀 마음에 담습니다. 이겨내기 힘든더위입니다. 건강 하셔요^^*

  • 2008년 8월 7일 오전 8:54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마라...아멘

  • 2008년 8월 7일 오전 10:0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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