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는 시장 구경을 하였습니다. 시장에는 많은 물건들이 있습니다. 생선, 야채, 반찬, 간식 같은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눈으로 구경하는 것도 쏠쏠한 즐거움입니다. 주로 대형마트나, 백화점 같은데서 하는 ‘시식코너’도 있었습니다. 어제는 돼지 껍데기 무침, 카레 떡볶이, 삶은 문어의 시식코너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한번 먹어보고 맛있으면 살 것입니다.
성당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줄까요? 신앙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줄까요? 성서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줄까요? 사람들은 무엇을 얻으려고, 무엇을 보기위해서, 무슨 목적으로 신앙을 갖고, 성당에 오며, 성서를 읽을까요? 한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매일 기도하고, 성서를 읽고, 단체 활동을 하고, 주일이면 어김없이 성당엘 옵니다. 왜? 무슨 이유로 그렇게 할까요? 신앙생활이 언젠가 다가올 죽음에 대한 준비인가요? 신앙생활은 외롭고 불안한 삶을 위로받고, 희망을 얻기 위한 것인가요? 신앙은 함께 하는 이웃들과 친교를 나누면서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기쁨을 얻는 것인가요?
오늘의 성서 말씀은 왜 우리가 신앙을 가져야 하는지, 왜 우리가 성당에 오는지, 왜 우리가 성서를 읽어야 하는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진리를 알고, 깨닫고, 진리를 살기 위해서입니다. 진리는 무엇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큽니다. 진리는 우리들의 의식과 상식이라는 그릇에 담기에는 너무 크다고 하겠습니다. 진리는 분석하고 알아야 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진리의 일면만을 알고, 볼 수 있습니다. 진리는 우리가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진리는 말씀에서 나왔습니다.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그 어떤 것들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은 하느님에게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하느님과 우리들을 이어주는 약속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려주는 약속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 주셨다는 약속입니다. 말씀은 우리를 공동체로 이끌어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함께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함께 사는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믿어 줄 수 있습니다.
말씀은 역사적인 사실과 사건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은 진리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관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말씀은 공동체를 친교와 일치로 맺어주는 삶의 지침입니다. 따라서 진리는 하느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숨 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삶으로 증언하지 않는 사람은 말씀을 들어도 듣지 못합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들은 많이 배웠고, 많이 알았지만 그 말씀을 삶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보면서도 진리를 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 외로운 이들, 죄를 지은 사람들 중에서는 말씀을 삶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많이 알지 못했고, 배우지 못했어도 진리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좋아하지 않는 말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사탄이 좋아하는 말들입니다. 어떤 말들일까요? “지겨워, 피곤해, 싫어, 죽겠어”와 같은 말입니다. 어떤 사람을 1주일 동안 조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겨워’라는 말을 500번 하더랍니다. 그렇게 말을 하면 삶이 지겨워지고, 삶이 고단하고, 주위 모든 것들이 싫어지고, 결국 죽고 싶어집니다. 하느님께서 좋아하는 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고마워, 사랑해, 감사해, 아름다워, 믿어요.’와 같은 말입니다. 이런 말을 1주일에 500번 정도 한다면 우리는 정말 고마워 할 일, 사랑하고 사랑받을 일, 아름다운 일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진리는, 영원한 생명은 내가 죽은 후에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두꺼운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 속에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