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에 십자가의 길이 있었습니다.
주보 공지를 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 하는 날이라서 걱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저의 걱정을 기쁨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십자가의 길에 함께 하셨습니다. 할머니 한분은 직접 제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밤길이고, 할아버지께서 거동이 불편하시고, 할머니도 기침을 하시기 때문에 부득이 집에서 십자가의 길을 해야겠으니 허락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당연히 집에서 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렇게 몸이 불편하신 분들은 집에서 하셔도 됩니다. 눈에 보이는 십자가의 길도 필요하지만, 우리 마음에 십자가의 길을 만들고 함께 해도 됩니다. 또한 분은 아직 세례를 받지 않으신 예비자인데 십자가의 길에 함께 해 주셨습니다. 따님이 먼저 첫 영성체를 하였고, 복사를 하기 위해서 매일 미사를 참례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딸을 위해서 매일 성당에 함께 오십니다. 딸이 십자가의 길을 간다고 하니 어머니도 함께 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놀라우신 방법으로 세례를 받지 않은 분까지도 십자가의 길로 초대를 하십니다.
십자가의 길을 하면서 그래도 위로가 되는 길은 두 곳 있습니다. 하나는 제5처입니다. 키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내가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우연히 누군가를 도왔을 때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도운 것이라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은총입니까? 예전에 보좌신부였을 때 가끔씩 본당 신부님 대신에 새벽미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왜 내가 신부님 대신에 미사를 해야 하나!’라고 불평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가 바로 키레네 사람 시몬이 되었던 것입니다. 요즘은 가끔 보좌신부님 대신에 새벽미사를 할 때가 있습니다. 신부님께서 청년들과 함께하시니 늦은 시간에 귀가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도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나는 키레네 사람 시몬이 되었구나! 우리는 원하지 않았지만 남을 도울 때가 있습니다. 희생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불평하고 짜증내기 보다는 ‘아 내가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구나!’ 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제6처입니다. 바로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드림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베로니카 성녀는 성서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베로니카 성녀는 두 분 중에 하나 일거라고 합니다. 한분은 오랫동안 하혈을 하다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하혈이 멈춘 여인입니다. 그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평생 수치와 부끄러움을 치유해주신 고마우신 분입니다. 그 여인은 늘 마음속에 주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분은 세리 자캐오의 부인입니다. 자캐오의 부인은 사람들에게 멸시와 조롱을 받던 남편이 너무나 안쓰러웠습니다. 재물은 있었지만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어느 날 남편은 예수님을 만났고 이제 삶의 가치와 삶의 중심이 바뀌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남편을 있는 그대도 받아 주셨고, 남편의 마음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자캐오는 세상의 구석에 있었는데 이제 예수님을 만나서 세상의 중심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자캐오의 부인에게 예수님께서는 가족을 구원해 주신 고마운 분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도망가고 없을 때입니다. 예수님 홀로 고난의 길을 걷고 있을 때입니다. 그럴 때 베로니카 성녀는 주님 곁으로 다가가서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드렸습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래도 5처와 6처가 있어서 주님께서는 힘을 낼 수 있었고, 잠시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함석헌 선생님의 ‘그 사람’이란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만 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 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도
마음이 외로 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사순시기입니다. 우리는 우연히 길을 걷다가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도와드렸던 시몬처럼,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을 잊지 않고 주님의 피와 땀을 닦아 드렸던 베로니카처럼 사순시기를 지내면 좋겠습니다.
주보 공지를 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 하는 날이라서 걱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저의 걱정을 기쁨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십자가의 길에 함께 하셨습니다. 할머니 한분은 직접 제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밤길이고, 할아버지께서 거동이 불편하시고, 할머니도 기침을 하시기 때문에 부득이 집에서 십자가의 길을 해야겠으니 허락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당연히 집에서 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렇게 몸이 불편하신 분들은 집에서 하셔도 됩니다. 눈에 보이는 십자가의 길도 필요하지만, 우리 마음에 십자가의 길을 만들고 함께 해도 됩니다. 또한 분은 아직 세례를 받지 않으신 예비자인데 십자가의 길에 함께 해 주셨습니다. 따님이 먼저 첫 영성체를 하였고, 복사를 하기 위해서 매일 미사를 참례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딸을 위해서 매일 성당에 함께 오십니다. 딸이 십자가의 길을 간다고 하니 어머니도 함께 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놀라우신 방법으로 세례를 받지 않은 분까지도 십자가의 길로 초대를 하십니다.
십자가의 길을 하면서 그래도 위로가 되는 길은 두 곳 있습니다. 하나는 제5처입니다. 키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내가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우연히 누군가를 도왔을 때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도운 것이라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은총입니까? 예전에 보좌신부였을 때 가끔씩 본당 신부님 대신에 새벽미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왜 내가 신부님 대신에 미사를 해야 하나!’라고 불평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가 바로 키레네 사람 시몬이 되었던 것입니다. 요즘은 가끔 보좌신부님 대신에 새벽미사를 할 때가 있습니다. 신부님께서 청년들과 함께하시니 늦은 시간에 귀가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도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나는 키레네 사람 시몬이 되었구나! 우리는 원하지 않았지만 남을 도울 때가 있습니다. 희생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불평하고 짜증내기 보다는 ‘아 내가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구나!’ 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제6처입니다. 바로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드림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베로니카 성녀는 성서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베로니카 성녀는 두 분 중에 하나 일거라고 합니다. 한분은 오랫동안 하혈을 하다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하혈이 멈춘 여인입니다. 그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평생 수치와 부끄러움을 치유해주신 고마우신 분입니다. 그 여인은 늘 마음속에 주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분은 세리 자캐오의 부인입니다. 자캐오의 부인은 사람들에게 멸시와 조롱을 받던 남편이 너무나 안쓰러웠습니다. 재물은 있었지만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어느 날 남편은 예수님을 만났고 이제 삶의 가치와 삶의 중심이 바뀌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남편을 있는 그대도 받아 주셨고, 남편의 마음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자캐오는 세상의 구석에 있었는데 이제 예수님을 만나서 세상의 중심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자캐오의 부인에게 예수님께서는 가족을 구원해 주신 고마운 분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도망가고 없을 때입니다. 예수님 홀로 고난의 길을 걷고 있을 때입니다. 그럴 때 베로니카 성녀는 주님 곁으로 다가가서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드렸습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래도 5처와 6처가 있어서 주님께서는 힘을 낼 수 있었고, 잠시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함석헌 선생님의 ‘그 사람’이란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만 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 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도
마음이 외로 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사순시기입니다. 우리는 우연히 길을 걷다가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도와드렸던 시몬처럼,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을 잊지 않고 주님의 피와 땀을 닦아 드렸던 베로니카처럼 사순시기를 지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