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어릴 때는 동네 친구들과 바깥에서 많이 놀았습니다. 방학 때면 하루 종일 놀다가 저녁 먹을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놀이도 종류가 많았습니다. ‘자치기, 비석치기, 술래잡기, 다방구, 딱지치기, 구슬치기’와 같은 놀이를 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어울려 동네 뒷산으로 가서 물장구도 하고, 가지나 오이를 따먹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웠던 어린 시절입니다. 요즘의 어린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엘 다닙니다. 동네는 모두 콘크리트로 포장이 돼서 아이들이 놀기에도 위험합니다. 놀 장소도 없고, 함께 할 친구도 없습니다. 놀다가 해가지면 집에 돌아오던 저의 어린 시절과는 달리 아이들은 국어, 영어, 수학, 피아노, 태권도 학원을 돌아다니다가 지친 어깨를 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에 오면 밥 먹고 잠을 자던 저희 때와는 달리 아이들은 집에 와서도 숙제를 하고, 공부를 해야 합니다.
저도 어릴 때 생각을 했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우니 공고를 가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대학은 돈벌이의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대학은 출세를 위한 발판이 아니었습니다. 대학은 말 그대로 크게 배우는 곳입니다. 대학은 머리로 살아야 하는 친구들이 가는 곳이었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상고를 가는 것, 공고를 가는 것에 대해서 열등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일찍 기술을 배워서 돈을 벌고 가족들의 생계를 도와주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보람도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생의 95%가 대학교에 진학하는 요즘을 생각하면 아이들이 너무나 힘들겠다고 여겨집니다.
아이들의 재능과 자질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아이들은 몸으로 살기를 원하고, 어떤 아이들은 머리로 살기를 원합니다. 몸으로 사는 아이들은 그에 맞는 기술을 배우고 일찍 사회에 적응을 하면서 살면 됩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머리로 살도록 강요하고, 비싼 수업료를 내고 학원을 보내니 성과도 없고 아이들은 더욱 힘들어 합니다. 머리로 사는 아이들은 굳이 학원에 보내지 않아도 예습 복습을 잘 하고, 공부에 취미가 있기 때문에 대학에 가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고등학교 졸업생의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개인으로 보면 엄청난 스트레스이고, 나라전체로 보아도 낭비입니다.
저는 신학교에서 논문을 쓸 때도 ‘설교학’을 선택했습니다. 설교학은 당시에 아무도 논문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힘들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 오히려 제게는 더 큰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사제는 매일 강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설교학을 논문으로 쓰면 사제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도 했습니다. 제가 논문 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지도 신부님의 도움이 컸지만 비교할만한 대상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통과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저는 신학교에서 ‘설교학’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능력이 있어서이기보다는 설교학을 공부한 분들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흐르는 강물을 봅니다. 강물에 떠밀려 가는 것들은 거의 생명이 없는 죽은 것들입니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떠밀려 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세상이라는 강물에 떠밀려서 사는 것도 자유입니다. 그러나 세상이라는 강물을 힘차게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더 큰 자유와 용기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는 고민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오늘 제1독서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생명과 축복 그리고 행복의 길이 있습니다. 어둠과 죽음 그리고 불행의 길이 있습니다. 그 선택은 우리들의 몫이라고 말을 합니다. 세상이라는 강물에 떠밀려가서는 생명과 축복 그리고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 길은 편한 것 같지만 목표가 없고 목적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라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길이 비록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결과는 축복과 생명입니다. 그리고 행복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택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조금 편하고 안락한 이집트에서의 생활로 돌아갈 것인지, 거친 바람과 뜨거운 햇빛이 가득한 광야의 생활을 할 것인지 입니다. 광야의 생활은 힘들지만 목표가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선택의 기준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체면 때문에, 자존심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들이 다 하니까 따라하는 시류의 편승도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십자가는 스스로 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비우면 채울 수 있고, 버리면 얻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