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며칠 동안 신부님들과 함께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신부님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사목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추진력이 있어서 본당의 일을 차질 없이 해 나갑니다. 어떤 분은 체력이 좋아서 운동을 잘하시고, 신자들과도 자주 만나십니다. 체력이 좋은 것은 그만큼 자신의 몸 관리를 잘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예술적인 감성이 뛰어납니다. 문화 예술을 사목에 접목하기도 하고, 다양한 공연을 기획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근면 성실합니다. 언제나 단정하시고, 사람들에게도 친절하며 늘 앞서가십니다. 신부님들과 함께 있으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니 그리 내세울 것이 없었습니다. 다만 신부님들께서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다면 그것은 제가 늘 긍정적이라고 합니다. 늘 웃으며, ‘고맙다, 감사하다, 미안하다, 즐겁다, 행복하다.’라는 말을 자주한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저는 긍정적인 이야기를 자주하는 편입니다. 추진력이 뛰어나지 못해도, 체력이 강하지 못해도, 예술적인 감각이 발달하지 못했어도, 근면하고 성실하지 못해도 제가 사제로 21년을 기쁘게 지낼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2007년도에 저는 이탈리아 로마의 공항에서 캐나다 토론토를 향해 출발하는 비행기 탑승수속을 하였습니다. 발권하는 과정에서 항공사 직원은 제가 중국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중국 사람은 범죄 용의자 였습니다. 결국 저는 함께 여행을 신부님과 함께 조사를 받았습니다. 몇 시간 조사를 받은 후에 저는 한국 사람이고, 아무런 혐의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저는 조사를 한 직원에게 ‘Thank You’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함께 있었던 신부님이 제게 화를 냈습니다. ‘형은 아무 잘못도 없이 조사를 받았고, 그래서 비행기 시간이 늦어져서 다른 비행기를 탑승하게 되었는데 화를 내지는 못할망정 고맙다고 말을 하면 어떡해!’ 저는 후배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시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저는 억울했습니다. 비행기 시간이 늦어져서 캐나다 토론토에서 저를 기다리는 사람은 3시간을 넘게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일정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당연히 화를 내거나, 아무 말도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그런 중에도 ‘고맙다.’는 말을 한 것은 사실 약간의 문제가 있는 것도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그 직원들도 저를 생전 처음 본 사람들이고 서양 사람들은 동양 사람들은 거의 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에 우연히도 그 사진 속의 사람이 저와 비슷하게 생겨서 조사를 한 것이니 그 사람들에게 꼭 책임을 묻기도 그랬습니다. 우산 없이 길을 가는데 비가 오면 맞을 수밖에 없듯이, 살다보면 그런 일도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화목한 가정이 처음부터 싸우고 다툼이 커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시작은 사소한 말다툼에서 생깁니다. 처음에 생긴 말다툼은 대부분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자신을 지나치게 내세우면서 시작됩니다. 상대방을 존중한다면, 상대방의 말을 먼저 경청한다면 약간의 다툼은 가족들을 더욱 가깝게 할 수 있습니다.
본당에서도 단체들이 분란을 일으키는 경우를 봅니다. 이것도 대부분은 말 때문에 시작됩니다. 신자들이 모인 단체에서 돈 문제로, 자식 문제로, 직업 문제로 분란이 날 일은 거의 없습니다. 약간의 말실수가 상처를 주곤 합니다. 그리고 그 상처는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듭니다. 그러면 오랫동안 친목을 유지했던 단체에 추운 겨울이 찾아옵니다. 그때도 먼저 사과하고, 미안하다고 말을 하면 금세 가까워지는데 그놈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신부님들 중에도 신자들과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봅니다. 많이 배운 신부님도, 추진력이 강한 신부님도, 근면하고 성실한 신부님도 가끔 낭패를 보는 것은 바로 말 때문입니다. 신자들이 성당에 오는 것은 위로 받고 싶어서입니다. 세상의 것들에서 찾을 수 없는 기쁨과 행복, 평화를 얻고 싶어 합니다. 성당에서 용기를 얻고, 희망을 찾고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다시 세상에 나가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며, 주님의 복음을 믿고, 주님의 복음을 살려고 합니다. 그런 신자들에게 윽박지르고, 반말을 하고, 죄인처럼 취급하면 신자들은 말은 하지 않아도 많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돌은 바람만으로는 아름다운 조각상이 될 수 없습니다. 돌은 햇빛만으로도 미소를 품은 작품이 될 수 없습니다. 돌은 석공이 끊임없이 다듬어야 합니다. 땀을 흘리고 섬세하게 돌을 쪼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우리의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까요? 그것은 감사라는 정입니다. 고맙다는 대패입니다. 미안하다는 사포입니다. 아름다운 말, 고마운 말, 희망의 말이 우리의 영혼을 정화시켜 줍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에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가족들에게, 이웃들에게 그런 말을 하면 좋겠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내입니다. 내 사랑하는 남편입니다. 내 사랑하는 며느리입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내 사랑하는 사제입니다.
말씀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말씀이 사람이 되셨으면, 말씀이 우리를 구원하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