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 1주일

2012. 2. 26. 오전 5:17:22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프랑스 파리에 흐르는 강의 이름은 ‘세느강’입니다. 영국 런던에 흐르는 강의 이름은 ‘템즈강’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서울에 흐르는 강은 ‘한강’입니다. 세느강과 템즈강의 공통점은 강이 깨끗하며, 강가에 사람들이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동차에게 내 주었던 강변도로는 이제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 주고 있습니다. 강을 건너는 다리도 예전에는 자동차 위주였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건너가기 쉽도록 했습니다. 강의 폭과 크기를 보면 우리의 한강이 훨씬 넓고 수량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한강은 아직도 사람들이 가까이 접근하기가 어렵고, 콘크리트로 높은 벽을 쌓아 놓았습니다.

우리의 한강에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콘크리트로 막았던 둑을 허물어서 사람들이 강가에서 거닐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리 위에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카페를 만들기도 했고, 승강기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강가로 내려 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강을 중심으로 다양한 볼거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는 자동차가 차지하고 있는 강변도로도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 줄 것 같습니다. 저는 한강에 대해서 작은 추억이 있습니다. 5살 때였습니다. 혼자서 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그만 지금 노량진에 내렸습니다. 제 눈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바다였습니다. 나중에 그 물이 한강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어린 제 눈에 그것은 바다처럼 보였습니다. 날이 어두워져서 저는 파출소를 찾아갔습니다. 길을 잃어버리면 파출소를 찾아가라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파출소에서 하루를 지냈고 다음날 아버지께서 데리러 오셨습니다. 아마도 식구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파출소를 출입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린이 날 남산에서 저금통을 준다는 말을 듣고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넌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한강다리를 처음으로 걸어본 일입니다. 그리고 본당에서 도보성지순례를 할 때 걸어서 한강 다리를 건너보았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한강다리를 건널 일이 없습니다.

개발, 성장, 편의주의라는 틀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일들입니다. 강을 통해서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환경, 생명, 사람 중심의 틀입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개발과 발전 그리고 편의주의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4대강의 개발이 그렇고, 제주도의 해군기지 건설이 그렇습니다.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재개발 사업이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는 깨끗함과 화려함을 택하는 대신에 그 안에 살았던 세입자들과 가난한 이들의 아픔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강은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인데 우리는 늘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리려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노아와 새로운 계약을 맺으십니다. 그리고 그 증표로 무지개를 세우셨습니다. 무지개는 비가 온 뒤에 태양의 맞은편에서 볼 수 있습니다. 비는 무엇입니까? 이는 정화의 상징입니다. 비가 내리면 공기는 깨끗해지고, 땅에는 생명이 자라납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듯이 그러면 얼굴이 깨끗해지듯이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더러워진 공기를 깨끗하게 하고, 목마른 대지에 생명의 기운을 넣어줍니다. 무지개는 늘 태양의 맞은편에 생깁니다. 이는 겸손의 상징입니다. 태양은 권력과 힘을 상징했습니다. 그 맞은편에 있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살겠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과 맺는 새로운 계약입니다. 무지개는 단순히 자연현상일수도 있지만 무지개가 의미하는 것은 세상의 것들로 더러워진 우리의 마음을 정화하고, 겸손한 삶을 살아가겠다는 우리의 다짐입니다.

환경, 생명, 사람 중심으로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세상의 것들이 매력적으로 보이고, 우리는 많이 소유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새들은 둥지를 하나만 가지고 살아갑니다. 다람쥐는 물을 마시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갑니다. 오직 사람만이 더 많은 집을 소유하려하고, 샘을 소유하려고 합니다. 불나방이 죽는 줄도 모르고 불 속으로 뛰어들 듯이 많은 사람들이 개발, 성장, 편의주의라는 불 속으로 날아갑니다. 그 유혹을 물리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본당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성전 건축에 쓰인 금액, 헌금의 액수, 신자 수 등을 먼저 보게 되는 경우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교회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와 활동입니다. 본당의 예산은 찬조와 나눔을 위해서 쓰여야 합니다. 지역의 현안을 함께 고민하고, 지역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서 연대하는 것도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교회는 지금의 현실에 안주하려하고, 외적인 성장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단식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유혹을 받으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살아가면서 늘 유혹을 받게 됩니다. 사탄은 더럽고, 무섭고, 추한 모습으로 우리를 유혹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설탕보다 더 달콤하게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무엇이 사탄의 유혹인지 식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노아와 맺으신 계약의 증표가 ‘무지개’라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구원의 증표는 ‘세례’입니다. 세례의 근본적인 의미는 ‘정화’입니다. 세례의 참된 뜻은 이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한다면 우리는 세상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사순시기, 오늘 우리는 사순의 장막을 열며 깨우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지상에서의 비움, 나눔, 회개의 삶, 그것은 결코 그냥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 속에서 우리가 바뀌어야 할 변화된 모습, 참된 회개의 삶을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격려하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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