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새롭게 나라를 세우고 여러 명의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저는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대통령의 시대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대통령, 사랑받는 대통령을 생각합니다. 모든 분들이 나름 공적이 있고, 또 나름 부족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제가 바라는 것은 정권이 바뀔 때 전임 정권의 부정과 부패를 척결하는 관행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정권과 권력이 깨끗한 정치를 해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정권 또한 정권교체를 하나의 축제로 만들어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가는 것, 전직 대통령이 불행하게 자살을 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들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끝없는 분쟁과 다툼을 양산할 뿐입니다. 악을 선으로 포용하는 것만이 새로운 세상,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께서 나라의 어른으로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는 나라, 전직 대통령께서 모든 권위와 권력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는 나라가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약해졌지만 지역감정, 이념갈등이 있습니다. 세대 간의 갈등, 계층 간의 갈등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문제로 대립하고 분열하면 우리는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도태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은 아주 강한 나라들이 있습니다.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중국이 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던 일본이 있습니다. 공산주의의 원조인 러시아가 있습니다. 이런 강대한 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기 위해서는 상생과 화합의 정치가 있어야 합니다. 포용과 용서의 정치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말을 조심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비난하고,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는 말보다는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주고, 상대방의 잘못을 용서해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저는 오늘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하고 친구를 비난한 적이 있습니다. 동창신부님께서 지난 2월 동창모임에서 제게 본당 사순특강을 부탁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준비를 했는데 동창신부는 제게 이야기 한 것을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동창신부님은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을 했고, 저에게도 사과를 하였습니다. 그랬으면 된 것인데 저는 다음 날 다른 동창들에게 친구의 잘못을 또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친구가 제게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친구도 사과를 하였고, 잘못을 인정했으니 더 이상 친구의 허물을 이야기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순간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친구의 이야기가 옳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잘못된 말은 3사람을 죽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첫째는 잘못된 말을 하는 본인의 인격을 죽이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말 못하는 상대방의 인격을 죽이는 것입니다. 셋째는 험담과 비난을 받는 당사자의 인격을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순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가끔씩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들에 대해서 묵상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할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나를 배반할 사람이 있습니다.’
유다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저는 아니겠지요?” 많은 경우에 배반은 절친했던 사람들에게 당하는 것들 봅니다. 많은 것을 나누었던 사람들에게 당하는 것들 봅니다. 본당에서도 보면 그렇습니다. 단체의 간부들끼리도 없는 자리에서는 상대방의 흉을 보기도 합니다. 이런 배반은 사제/ 수녀/ 평신도 모두에게서 나타나곤 합니다. 저는 교구에 있을 때 본당에서 ‘투서’를 보내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본당 신부님의 잘못을 지적하고, 본당 신부님을 비난하는 그 사람은 사실 본당 신부님과 늘 가까운 자리에 함께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예수님을 팔아 넘겼던 그 유다와 비교해서 “나는 아니죠!”라고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베드로 사도를 생각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늘 모범생이었고, 예수님께 칭찬도 많이 받았습니다. 기도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유다와 베드로는 똑같이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다와 베드로의 삶은 그 끝이 달랐습니다. 유다는 절망하였고, 희망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하느님께 돌아오려는 용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베드로는 절망을 버렸고, 희망을 가졌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잘못을 용서하셨습니다. 베드로의 배반을 묻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비록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돌아오면 다시 생명을 얻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인일지라도 회개하고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하느님 사랑은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똑같이 햇볕을 주십니다. 그 사랑은 회개하는 사람의 몫입니다. 사람이 안고 사는 분노도 나쁘지만, 그것보다 남을 멸시하는 태도가 더 나쁩니다. 모든 이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 대한 미움과 분노, 멸시, 비난 등은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태도입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께서는 늘 나와 함께 계셨는데, 나는 주님이 힘들어하실 때, 주님께서 함께 기도하자고 하실 때, 어쩌면 늘 주님을 외면한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