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 2주일

2012. 3. 4. 오전 5:01:05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릴 때, 겨울은 유난히 더 추웠습니다. 날씨는 지금보다 더 추웠고, 몸을 따뜻하게 해 줄 옷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위로 형들이 두 명 있기 때문에 저의 옷을 따로 사 입기 보다는 형들이 입던 옷을 많이 입었습니다. 형들이 쓰던 가방, 형들이 쓰던 교과서를 물려받아서 쓰는 것이 당시에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신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처음으로 양복을 하나 사서 입었습니다. 양복은 신학생들이 주일 미사에 입어야 하는 예복이었기 때문입니다. 신학교에서 4학년이 되면 수단이라고 하는 예복을 입게 됩니다. 독서직을 받으면서 입는 옷입니다. 그 옷을 입기 전에 ‘성타식’을 했습니다. 앞으로 성직의 길을 가게 될 것이고, 성직자들을 때리는 것은 독성죄이기 때문에 그 성직자의 옷을 입기 전에 선배들이 후배들의 엉덩이를 몽둥이로 때리는 예식입니다. 그만큼 성직의 길이 소중한 것이니, 한번 마음먹은 길 포기하지 말고 가라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저는 1983년 겨울에 입었던 수단을 아직도 입고 있습니다. 많이 낡았지만 그래도 그 옷을 처음 입었던 때의 감격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제가 된 뒤에는 제의를 입게 됩니다. 미사를 집전할 때 사제들은 제의를 입습니다. 서품을 받을 때 사제들은 서품제의를 입게 됩니다. 그 제의를 평생 입으면서 나중에 세상을 떠나면 사제들은 서품식 때 입었던 그 제의를 입고 하느님 품으로 가게 됩니다.

요즘 학생들이 즐겨 입는 옷이 있다고 합니다. 그 옷의 이름은 ‘North Face’입니다. 가격도 상당히 비싸고 비싼 만큼 따뜻한 옷입니다. 그 옷을 입지 못한 학생들은 소외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 옷을 입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합니다. 제가 학생 때는 감히 생각할 수 없었던 옷들입니다. 옷이 날개라고도 하고, 옷이 사람의 품격을 표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옷을 입는 사람의 인격과 그 옷을 입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오늘 우리는 제1독서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늙은 나이에 얻었던 아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아들 이사악을 희생 제물로 바치도록 아브라함에게 이야기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명합니다. 불평과 원망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선물로 주실 때는 언제고, 도로 가져가시는 것은 무슨 이유냐고 따지지도 않습니다. 모든 것은 주님께서 주신 것이니, 주님께서 도로 거두어 가시는 것에 대해서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의 삶은 무척 짧고,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은 영원하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원망과 불평, 불신과 불만의 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순명의 옷을 입었고, 하느님을 위해서라면 희생의 옷도 기꺼이 입었습니다. 그러기에 성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올랐습니다. 제자들은 산에서 거룩하게 변모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입으신 옷은 세상 그 어떤 옷 보다 더 아름답고 화려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셨을 때 입으셨던 옷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하느님께 순종하시면서 마지막 십자가의 길에서 입었던 옷입니다. 로마의 병사들은 그 옷을 제비를 뽑아 가졌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입으셨던 옷입니다. 수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사람들에게 기쁨과 위로를 드리는 복음을 선포하실 때 입으셨던 옷입니다. 예수님은 그 옷마저 빼앗기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복음 선포도, 하느님 나라도, 기적들도 모두 실패했던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치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아들 이사악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는 그런 고통이고 아픔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아들 이사악을 다시 아브라함의 품으로 돌려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실패하신 것처럼 보였지만, 악의 세력이 드디어 승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버린 후에 부활의 영광을 얻었고, 제자들에게 다시 돌아오실 수 있었습니다.

며칠 전에 읽은 글이 생각납니다. ‘잔잔한 파도는 훌륭한 뱃사공을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산이 깊어야 계곡의 물도 마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우리를 편안하게 하고, 풍요롭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친 파도를 헤치면서 사공은 배를 운전하는 법을 배우듯이, 우리들은 세상의 시련과 갈등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이 시련과 갈등은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 시키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당신의 친 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바오로 사도는 오늘 우리에게도 똑 같은 말을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누가 우리를 하느님께로부터 떼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어둠도, 칼도, 굶주림도, 헐벗음도, 죽음도’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사랑의 띠로, 믿음의 띠로, 희망의 띠로 맺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복음 묵상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