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꽃샘추위가 매섭게 왔습니다. 3월인데도 날씨가 얼어붙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고, 믿고 있습니다. 곧 봄이 온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름을 아주 아름답게 정한다고 생각합니다. 봄에 가끔씩 찾아오는 추위를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는 추위라고 정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시기와 질투’가 있는 곳은 아름다운 꽃밭을 얼어붙게 만드나 봅니다.
예전에 원효대사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당나라로 유학을 갈 때 이야기입니다. 며칠 씩 길을 걸어가다가 먹을 것이 떨어졌습니다. 어느 깊은 동굴에서 잠을 청하는데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습니다. 잠을 자다 일어나니 어두운 동굴에 그릇이 있었고 그 그릇에 물이 있었습니다. 원효대사는 그 그릇의 물을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꿀맛’같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일어나서 어제 맛있게 먹었던 물과 그릇을 보니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그릇은 사람의 인골이었고, 물은 오래돼서 상한 물이었습니다. 눈으로 그릇과 물을 보자 어제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그 물이 역겹게 느껴졌고, 배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원효대사는 그 때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一切唯心造’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을 먹기에 따라서 정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원효대사는 동굴에서의 체험을 끝으로 당나라로의 유학을 포기하고, 신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의사들이 가끔씩 환자들에게 하는 처방이 있습니다. 몸은 별 이상이 없는데 심리적으로 아픈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 주고 영양제나 비타민 같은 약을 준다고 합니다. 물론 그 약은 영양제나 비타민이 아니라, 지금 아픈 병에 필요한 약이라고 이야기를 해 줍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가짜 약을 먹은 후에 아팠던 몸이 좋아지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환자들은 의사를 믿고,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이 몸에 좋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고 합니다. 공자께서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사람을 믿기도 어렵지만 한번 믿었던 사람을 의심하지 않기는 더욱 어렵다.’ 서로 믿어서 부부가 되었지만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부부는 남남보다 더욱 어려운 삶을 살게 됩니다. 의심의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면 남편이 회사에서 무엇을 하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면 남편이 늦게 퇴근을 해도, 술을 마셔도 든든하게 보입니다. 같은 남편의 하루이지만 의심의 눈으로 보는지, 믿음의 눈으로 보는지에 따라서 남편은 든든하게 보이기도 하고, 남편은 못된 남자로 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늘 강조한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그리고 아픈 사람들에게도 단 한 가지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아프고 병든 사람이 ‘믿습니다.’라고 말을 하면 예수님께서는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남과 북의 가장 큰 문제는 군사력이 아닙니다. 분단의 벽인 삼팔선이 아닙니다. 그것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입니다. 남과 북이 서로를 믿는다면 군사력도, 분단의 장벽도 민족 통일에 큰 걸림돌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크게 대두되는 문제도 그렇습니다. ‘세종시, FTA, 제주도 해군기지, 4대강, 편파방송’과 같은 문제들의 핵심은 정부의 정책에 대한 불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시리아 장군 ‘나아만’은 평생 괴롭혀 오던 ‘나병’이 치유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요르단 강에 몸을 담갔기 때문입니다. 나아만도 알고 있었습니다. 요르단 강의 물은 시리아에 있던 다마스쿠스 강보다 수질이 더 좋지 않다는 것을 말입니다. 처음에는 의심하고 요르단 강에 몸을 담그지 않았습니다. 물론 나병은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믿음을 가졌고 요르단 강에 몸을 담갔습니다. 나아만은 나병이 깨끗하게 치유되었습니다. 강물이 나아만을 치유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치유된 것입니다.
한 주일이 시작되는 월요일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사랑의 눈으로, 희망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