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 활동 중 어려움을 겪는 분들 돌봄은 하느님께 드리는 공덕입니다.’
사람이 다니는 길에 무거운 돌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한 고관이 지나가다가 “어떤 사람이 이렇게 못된 짓을 했어!” 하고 비난하며 그냥 지나갔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바쁜데 왜 귀찮게 만들어.” 하면서 돌을 피해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손수레에 짐을 잔뜩 싣고 가던 상인이 다른 사람들의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 손수레를 세우고 돌을 치웠습니다.
그런데 돌이 있던 자리에 하얀 봉투가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임금님께서 좋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상으로 내리는 봉투였습니다. 이 봉투 겉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여기에 당신의 착한 마음을 어여삐 여겨 거금을 주노라!”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나라님이, 숨어서 좋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내리는 상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사는 것이 인생 최상의 가치입니다.
복음서에도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당해 초주검이 되어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어떤 사제는 그냥 지나가버렸고,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못 본 채 그냥 지나가 버립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그는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소독을 하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봐준 후 다음 날 여관을 떠나면서 여관 주인에게 그 사람을 돌봐 줄 것을 부탁하면서 돈이 더 들면 돌아올 때 갚아 주겠다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 사람 가운데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묻고 계십니다(루카복음 10장 29절~37절). 또 마태 25장 ’최후의 심판‘에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시며 ’악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레지오 활동보고에 의하면, <어려움을 겪는 분 돌봄> 이라는 항목에 교우환자 돌봄, 외인환자 돌봄, 교우상가(喪家) 돌봄, 외인상가 돌봄, 독거노인 돌봄 등이 있습니다. 요즘은 장사가 잘 안되어 경기가 어렵고, 직장도 불완전 하고, 물가는 치솟아 자기 몸 추스르며 살아가기도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시간이 남아돌고 돈이 많은 사람들이기보다 오히려 시간에 쫒기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에서 많다고 합니다.
금년 2월 초, 순교자의 모후 Pr 제9차 사업보고서의 ‘특기사항’을 보면 독거노인 돌봄 활동에서 매 2주에 한 번씩 독거노인을 방문하여 목욕봉사를 하는 단원을 만나게 됩니다. 저도 오래 전, 몇 년간 요셉형제님과 한조가 되어 수년간 목욕 봉사를 하다가 그 할아버지께서 선종하셔 장례 절차까지 도와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거르지 않고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은 봉사할 때의 어려움 보다 봉사 후의 뿌듯한 행복감이라고나 할까요. 봉사활동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는 쾌감(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에서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은 레지오 단원의 의무가 아니라 우리 가톨릭 신자의 의무요, 예수님 제자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매일 복음 묵상을 통해 주님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지 곰곰이 살펴 볼 일입니다. 내가 남을 사랑할 때 남도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고 주는 것이라는 사실 또한 금언(金言)입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