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때 뛰어난 영성가였던 어느 사제가 하루는 “용서”에 대해 강론했습니다. 미사가 끝나자마자 장군 한 사람이 아주 다급히 사제를 찾아왔습니다. 신앙심이 깊었던 그는 자신의 마음속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신부님, 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정말 잘 들었습니다. 백 번 옳으신 말씀이죠. 그렇지만 저는 제게 칼을 들이댄 놈을 죽어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의 말을 경청하던 사제가 이렇게 말을 건넸습니다.
“장군님! 장군님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요, 좋습니다! 장군님은 칼을 들이댄 사람을 용서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만일 장군님이 죽어도 그를 용서하지 않으려면 앞으로 장군님은 죽어도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느님과 이웃 앞에 용서를 청해야 하는 부족한 존재입니다. 어느 누구도 아무런 결점과 허물없이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죽어도 용서하지 않으려면 죽어도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눈에 흙이 들어가더라도 증오할 수밖에 없다면 눈에 흙이 들어가더라도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동시에 하느님에게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을 생각조차 품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은 자기 가슴을 찢어 놓은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주님이 먼저 우리를 용서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도저히 갚을 길 없는 온갖 죄의 빛을 남김없이 탕감 받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느님은 아무 조건 없이 매번 내 잘못을 용서해주십니다. 따라서 신앙인에게 있어서는 용서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의 ‘절대적인 지상 명령’입니다.
행여 여러분이 죽는 날까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해 끝까지 증오를 불태워 보십시오. 여러분에게 남는 것은 뼈에 사무치는 한(恨)뿐이요 자신에게 끊임없이 독약을 투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린 채 늘 무언가에 짓눌려 답답한 가슴을 앉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능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용서하는 일’입니다. 그 위대한 능력을 하느님이 먼저 보여주셨고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여러분은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 위대한 능력을 기필코 발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우리에게 똑같이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마태 18,35)
우리는 성탄을 앞두고 지금 대림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대림절에 죽어도 하지 못할 용서를, 눈에 흙이 들어가도 하지 못할 용서를 실천에 옮겨 봅시다. 예수님께서 성탄의 선물을 가슴 가득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