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니아(Albania) 태생의 인도 수녀 마더 데레사, 예순아홉 살 되던 지난 1979년, 그녀의 예상대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기자들이 축하 인사와 더불어 한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데레사 수녀님!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건장한 사람도 하기 힘든 일을 어떻게 그 연세에 몸도 편치 않으시면서 그토록 훌륭히 해 내실 수 있습니까?” 데레사 수녀는 특유의 주름진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하느님께서 해주셨을 뿐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대답이 아닙니까. 이는 자기 능력과 재능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성취시켜주셨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의 구원 역사 안에는 반드시 인간의 협력이 요구됩니다. 그런데 그 협력자들은 지극히 평범했고 때로는 하찮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대표적 협조자인 모세와 마리아가 그랬고, 열두 사도를 보면 이러한 사실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왜 하필 못나고 부족한 이들을 뽑았을까요. 똑똑하다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 대신에 자기의 말을 전할 것이요, 잘난 사람은 주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 영광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서 초대 교회의 생생한 모습이 사라진 것은, 약한 자 안에서 능력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인간적인 능력에 의지하려는 유능하고 잘난 우리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자만한 이들은 공동체 안에서 문제를 일으켜왔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협조자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사실상 주님의 자녀가 된 것은 자격과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유능하고 착하고 거룩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되면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고, 자신이 못났음을 깨닫게 되면 이웃과 다툴 일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신앙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자들 안에서 드러나는 현상이요, 분열과 시기는 잘난 사람들 안에서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통해서 위대한 일을 하십니다. 반면 마귀는 스스로 잘났다고 자부하는 이들과 함께 일합니다. ‘불신앙인의 자세는 자신을 앞세우며 하느님을 뒤로 밀쳐내는 것이요, 신앙인의 자세는 하느님을 앞세우며 자신을 뒤로 밀쳐내는 것이다’ (성아우구스티노)
지금 우리는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시기 3주째를 맞고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대림특강에는 복음화학교 교장선생님이신 정치우 안드레아 형제님께서 좋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중 ‘성탄을 기쁘게 맞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시고 ‘우리가 준비해야 할 선물은 자선, 극기, 회개 모두 좋지만 예수님께서 제일 기쁘게 받으실 선물은 나 자신 안에 있는 잘못된 습관을 고치는 것,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단원 여러분들도 이번 기회에 ‘내 안에 잘못된 습관을 끊어 주십사’하고 예수님께 진실로 기도하시지 않으실래요. 급한 성질, 게으름, 나쁜 습관(예: 술, 담배, 낭비, 사치), 남을 비방하는 일 등 한가지만이라도 하느님께 봉헌하시기 바랍니다. 하느님께 봉헌하면 마더데레사 수녀님 말씀처럼 “여러분은 제가 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하느님께서 해주셨을 뿐입니다!“ 라는 겸손을 배울 수 있을 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