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의 겸손을 따릅시다

2011. 12. 24. 오전 6:55:36

글자

성모님의 겸손을 따릅시다.

인도의 힌두교 학자가 강을 건너려고 나루터로 나왔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나직하게 떠 있고 비바람이 몰아칠 것 같았으나, 늙은 뱃사공은 세 명의 힌두교 학자를 싣고 노를 젓기 시작했다.

그 중 한 학자가가 뱃사공에게 물었다.

“천문학에 대해서 좀 아십니까?”

“나는 평생 노만 저었기 때문에 모릅니다.”

“허, 당신은 대부분 생을 헛살았군요.”

조금 있다가 다른 학자가 철학을 아느냐고 물었다. 노인의 대답은 역시 똑같았다.

“허, 당신은 반평생을 잃었군요.”

세 번째 학자가 물었다.

“그러면 힌두교 경전이나 심리학 그리고 생물학 따위도 모르겠군요?”

노인은 짜증스럽다는 듯이 모른다고 대꾸했다. 그러자 그 학자는 불쌍하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찼다.

이때, 갑자기 세찬 비바람이 불어 그 나룻배를 뒤집어 놓았다. 세 학자가 사람 살리라고 비명을 지르는데, 그 노인 뱃사공이 그들에게 말했다.

“여보시오, 당신들은 아는 것이 많은데, 그동안 수영도 못 배웠소? 참 딱하기도 하셔라. 그렇다면 당신들은 생의 전부를 잃었군요!”

이렇게 말한 그는 그들을 구해준 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그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의 잘난 지식은 당신들 자신도 구하지 못했으니,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소. 당신들의 생의 전부를 걸 그런 것에 관심을 갖도록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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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물거품 같은 세상의 온갖 지식과 소유에 집착하여 소중한 생을 소모하고 산다. 우리가 진정 기울여야 할 생의 관심은 우리 영혼의 부요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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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시인 고진하의 ‘아주 특별한 1분’에서 옮긴 글입니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해 겸손치 못한 세 명의 힌두교 학자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머릿속에 지식은 가득 들었을망정 겸손을 알지 못하면 거짓 지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남을 존경해야 존경 받을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남을 존경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도 겸손한 마음으로 가브리엘천사의 말을 받아 들였기 때문에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 것입니다. 루카 (1,26-38)

연말연시가 되면 성당에서도 많은 분들이 단체장을 내놓겠다고 벼르는 것을 봅니다.  특히 레지오 간부들도 적당한 핑계를 대고 자리를 내놓겠다고 합니다.

레지오 간부는 3년이라는 임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레지오 단원 선서’를 하면서 성령께, ‘레지오의 선서문’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선서문의 말미에는

“오늘 저는, 당신께서 저를 받아 주시고 저를 써 주시며 저의 나약함을 굳센 힘으로 만들어 주시리라 확실히 믿으며 다짐하나이다.

저는 감히 레지오 대열의 한 자리를 차지하여 충실하게 봉사하겠나이다.

이 규율은 동료 단원들과 저를 하나로 묶어 군단을 이루도록 하며, 또한 성모님과 함께 진군하는 우리의 대열을 가다듬어, 당신의 뜻을 이루고 은총의 기적을 일으키게 하겠나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땅의 얼굴은 새롭게 되고 온 누리에 하느님의 나라가 펼쳐지게 될 것이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종이오니”라고 신앙고백을 하신 성모님의 겸손을 본받도록 합시다. 그리고 새해에는 더욱 열심히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고(봉사), 말씀을 전하는(선교) 우리 레지오 단원이 됩시다. 즐거운 성탄 되시기 바랍니다.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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