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는 돌을 등에 지고 건너지 않으면 안 되는 강이 있습니다.
강의 수심은 그리 깊지 않으나 물살이 무척 세서 맨몸으로 건널 수가 없습니다. 세찬 물살에 휩쓸려 목숨을 잃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강을 건널 때는 힘이 들더라도 무거운 돌을 등에 져야만 합니다.
우리들 앞에 건너야 하는 인생의 강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강의 물살이 때론 약하기도 하고, 때론 무척 거세지기도 합니다. 이 강을 건너노라면 등에 무거운 짐을 져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가 바로 물살이 세찬 강물을 만난 때임을 알고, 무거운 짐을 지워준 삶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준 삶에 대하여 못마땅한 점이 있다고 하여 이를 땅바닥에 팽개칠 수는 없습니다. 부모님의 짐, 자식의 짐, 배우자의 짐, 직장에서의 짐, 사회에서의 짐 등 어느 것 한가진들 내려놓을 수 있는 짐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차피 지고 가야할 짐이라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는 것이 훨씬 편합니다.
본당에서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당에서 직책을 맡고 봉사 활동을 하다가 힘이 든다고 하여 아무 때나 아무데나 내려놓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특히 우리는 하느님 사업을 맡아 해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힘들다고 해서, 동료 단원들과 갈등이 있었다고 해서, 단체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사제와 갈등이 있었다고 해서 아무런 부담 갖지 않고 내려놓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짐을 내려놓으면 누군가가 그 짐을 나대신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려놓으면 그 당시는 당장 개운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은 아닐 것 같네요.
며칠 전 저에게 레지오 단장 자리를 내놓겠다고 몇 분이 말씀을 하셔 ‘강을 건너는 법’이라는 주제로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번 주 레지오 훈화로 선택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묵주의 기도를 바치면서 고통의 신비를 묵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땀을 흘리시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매를 맞으시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시관을 쓰시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을 묵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제 예수님께서 지셨던 그 짐을 우리가 대신 지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다시는 우리 때문에 예수님께서 고통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일이 없도록 하겠노라고 다짐을 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봉사(이웃 사랑)를 통해 주님께서 흘리신 피땀의 만분의 일이라도 되갚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을 때, 우리가 마지막 날 주님 앞에 떳떳이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의 잉태 소식을 들으시고 처음에는 황당무계한 소식에 놀랐지만 하느님의 뜻임을 알고 곧 순명을 하게 됩니다. 정말 피하지 못할 사정이 있고 생에 커다란 지장이 있으시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리를 내놓기에 앞서 진실로 기도를 해 보십시오. 레지오는 누구나 입단할 수 있고 어느 때나 떠날 수 있는 단체가 아닙니다. 레지오는 축복받은 사람만이 선택되어 불림을 받은 영광된 자리입니다. 레지오는 성모님을 사령관으로 모시고 활동하는 평신도 심신단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노고(勞苦)가 크면 클수록 하늘나라에 적금 통장의 액수는 불어날 것입니다. 단원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충만하시길 바라고, 하느님의 축복 많이 받으시길 기도드립니다.
새해 복(福) 많이 받으세요!
끝으로 정철의 ‘이고진 저 늙은이’라는 시를 함께 묵상하시겠습니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울까
늙기도 설워라커늘 짐을 조차지실까
상지의 옥좌 꾸리아 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