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귀한 것을 바치노라

2023. 8. 28. 오후 12: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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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귀한 것을 바치노라


19세기경 중국에서의 전쟁 공로로 인정을 받은 고든(C.G.Gordon:13833~1885) 장군에게 영국 정부는 대단한 포상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장군은 겸손한 마음으로 준비된 상금과 직위를 모두 거절했습니다. 그 대신 전쟁의 내용이 새겨진 금메달을 청했습니다. 이로써 그 금메달은 고든 장군에게 있어 생에 최고의 귀중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장군이 죽은 후에 유족들은 금메달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장군의 일기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이랬습니다. 흉년이 아주 심했던 어느 해에 고든은 귀한 금메달을 전부 녹였습니다. 그렇게 녹인 금을 팔아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식량을 사주었던 것입니다. 메달을 녹인 날짜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지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긴 마지막 물건을 나는 오늘 하느님께 바치노라.”


유대 격언이 알려주는 바대로, 건강할 때의 자선은 금()이요, 병들었을 때의 자선은 은()이요, 죽고 난 뒤의 자선은 동()입니다. 언젠가 때가되면 나도 큰 자선을 하겠노라고, 형편이 좀 풀리면 하겠노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지금 당장 하지 못하는 자선은 미래의 어떤 날에도 결코 행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욕심은 항상 현재의 경제적 형편을 앞서가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은 기도와 고행 그리고 자선을 속죄의 대표적인 길로 가르쳐왔습니다. 우선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는 기도가 아니고서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 깨달음은 자기 죄를 기워 갚는 단식과 같은 고행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러한 보속 행위는 단순히 자신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도 아니요 그 자체만으로 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단식으로 절제한 것을 아웃과 나눔으로써만이 비로소 결실을 거둘 수 있습니다. 곧 자선은 회개와 보속의 증거가 되는 셈입니다. 따라서 기도와 고행과 자선은 서로 관련이 없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총체적인 속죄의 과정입니다. 참된 회개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부족했던 행실에 대한 속죄의 마음으로 가진 바를 이웃과 나누어야 합니다. 실상 타인에게 무언가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것은 자신이 부유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이 소유한자가 부자가 아니라 많이 베푸는 자가 부자입니다. 하나라도 잃을까 마음을 졸이면서 돈을 모으는 자의 마음은 늘 가난합니다. 건강할 때에 자선을 베풂으로써 천상의 금()을 얻으면서 벌써부터 부자로 살아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네가 가진 것에서 자선을 베풀어라. 그리고 자선을 베풀 때에는 아까워하지 마라. 누구든 가난한 이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마라. 그래야 하느님께서도 너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않으실 것이다. 네가 가진 만큼, 많으면 많은 대로 자선을 베풀어라. 네가 가진 것이 적으면 적은 대로 자선을 베풀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네가 곤궁에 빠지게 되는 날을 위하여 좋은 보물을 쌓아 두는 것이다.

자선은 사람을 죽음에서 구해 주고 암흑에 빠져들지 않게 해 준다. 사실 자선을 베푸는 모든 이에게는 그 자선이 지극히 높으신 분 앞에 바치는 훌륭한 예물이 된다.“(토빗 4, 7-11)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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