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드립니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라는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이 있습니다. 조촐하게 살던 주인공 파흠이 땅 욕심에 눈이 번쩍 뜨이자 이사를 수없이 다닙니다. 하루는 어느 마을에서 원하는 만큼의 땅을 준다는 소문을 듣습니다. 그 즉시 머슴을 데리고 갔더니 그곳의 촌장이 말했습니다.
“우리 마을에서는 하루 동안 걸은 만큼의 땅을 드립니다. 당신이 원하는 곳을 출발해서 한 바퀴 돌아오기만 하면 됩니다. 단, 해가 지기 전에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꿈에 부푼 파흠은 해가 뜨자마자 길을 떠났습니다. 걷는 것이 성에 차지 않아 숨이 차도록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던 어느 순간 불안이 엄습해 왔습니다. 해는 이미 지기 시작했고 떠나온 곳을 바라보니 아득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죽으라고 달려 보았지만 힘도 없고 시간도 부족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엄청난 땅을 코앞에 둔 채 피를 토하며 죽었습니다. 뒤따라 온 머슴이 파흠을 묻었는데 그가 묻힌 땅의 크기는 3아르신, 겨우 2미터 10센티였습니다.
이 이야기 끝에 톨스토이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가 이 세상에서 차지할 수 있는 땅의 전부였다.’ 소설 속의 주인공의 모습은 오늘 날 우리의 삶과도 흡사합니다. 세상에서 일한 만큼 벌어들인 것이 전부 제 것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되돌아갈 생각은 까마득히 잊은 채 정신없이 달리고만 있습니다. 인생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일에만 파묻혀 살아갑니다. 그러다 자기 인생에 해가 지기 시작하면 그제야 깨닫습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고 맙니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고 시간은 화살처럼 지나가 버리지 않습니까. 더구나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은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1코린 7, 31).
세계의 리더십 전문가인 샤르마 박사는 『내가 죽을 때 누가 울어줄까?』에서 독자들에게 호소합니다. “당신이 태어났을 때 당신은 울음을 터뜨렸지만 당신을 지켜본 모든 이는 기뻐했다. 그런데 당신이 죽을 때만은 사람들이 울겠지만 그때 당신은 기뻐할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야 한다.”
사람이 끝을 모르면 제멋대로 살게 되고 끝을 생각하지 않으면 어리석게 마련입니다. 나뭇잎의 초록 향연도 오래지 않아 바람에 흩날리며 땅 아래로 무두 떨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송현 신부)
1982. 10. 30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이태리 레지오 단원들에게 하신 말씀에서 레지오는 믿음을 통해서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이로써 ‘개인 성화를 이루고자 열망하는 평신도 단체’라고 말씀 하시며, 그리스도의 모상인 모든 사람에 대하여 성모님의 정신과 사랑으로 봉사하고자 한다고 하시며, ‘레지오는 성모 신심을 통하여 세상 모든 이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성자를 더욱 널리 알리고 더욱더 많은 사랑을 받으시게 하는 일’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단체가 바로 레지오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선교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러 오셨음을 널리 알리고, 우리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사랑이심을 세상에 선포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레지오 교본 제1장 ‘명칭과 기원’에서 “레지오 마리애는 가톨릭 교회가 공인한 단체로서, 모든 은총의 중재자이시며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의 강력한 지휘 아래, 세속과 그 악의 세력에 맞서는 교회의 싸움에 참가하기 위하여 설립된 군대이다.”라고 정의(定義)하고 있습니다.
제2장 ‘레지오의 목적’에서는 “단원들의 성화(聖化)를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3장 ‘레지오의 정신’에서는 “성모님의 깊은 겸손과 온전한 순명, 용기와 희생으로 바치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갖추고자 열망하며, 무엇보다도 성모님이 지니신 그 높은 믿음의 덕을 갈망한다. 이와 같은 사랑에 감화된 레지오는 할 수 없다는 불평은 결코 하지 않는다.”라고, 레지오 단원은 성모님처럼 순명해야 하는 덕을 갖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톨스토이의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라는 소설의 짧은 글을 통해 ‘파흠이 아무리 물욕을 부려봐야 가질 수 있는 것은 겨우 2미터 10센티의 땅이 전부였다,’ 라고 합니다. 우리는 파흠의 전철(前轍)을 밟아서는 안 되겠지요.
샤르마 박사는 “당신이 태어났을 때 당신은 울음을 터뜨렸지만 당신을 지켜본 모든 이는 기뻐했다. 그런데 당신이 죽을 때, 사람들이 울겠지만 그때 당신은 기뻐할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우리들에게 좌표(座標)를 설정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말씀 따라 사랑을 베풀고 성모님의 말씀 따라 겸손과 희생, 순명의 삶을 통해 마지막 날 소풍을 끝내고 이 세상을 떠날 때, 모든 사람이 떠나보냄이 아쉬워 슬픔에 잠겨 있어도,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감사의 마음으로, 웃으면서 떠날 수 있기를 소망(所望)해 봅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31-32)라고 말씀 하십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에도 주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바치라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제자가 되고 싶다면 당신의 말씀 안에 머무르라고 하십니다. 그처럼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주님의 사랑이 배어 있어야 주님 안에 머무를 수 있지 않을까요?
마리아는 이렇게 응답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 하느님 말씀에 대한 응답은 그 말씀을 온전히 믿는, 그 믿음에서, 그 "아멘"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진리의 말씀이 그에게 자리 잡고 열매를 맺습니다.
이사야는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이사 55,10)고 하십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만 해 주어도 그 기쁨이 바로 나에게 하늘나라의 열쇠가 되어 상으로 주어지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마지막 날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창세 3, 19)
파흠은 땅 욕심에 자신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하여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피를 토하며 최후를 맞게 됩니다. 늘 평화와 기쁨이 넘치는 곳, 우리는 그곳을 희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레지오 단원으로 산다는 것은, 평소에 복음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이미 하늘나라의 예비 티켓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날마다 복음의 기쁨을 나눕시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