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가로등
아파트 단지가 생기고 재계발이 되기 전인 서울 풍경은 온통 산동네였으며 골목길이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고 가로등도 없어서 얼마나 어두웠던지 해만지면 그 미로에서 크고 작은 사고들이 일어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한 모퉁이, 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한 집 앞에 언제나 외등이 환희 켜져 있었습니다. 그 집엔 앞을 못 보는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마음에 불을 켜고 서로의 눈이 되어 주는 아내 그리고 남편, 그들에겐 불빛은 있으나마나한 존재지만 매일 저녁 해가 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외등을 켜는 것이었습니다.
방에서 쉬고 있다가도 아내는 남편에게 한 가지 확인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당신 외등 켰죠?”
“그럼, 그걸 잊을 리가 있나.”
볼 수도 없는 등을 켜는 일, 그것을 혹 이웃들이 어두운 골목에서 넘어지거나 다치지 않을까 염려하는 시각장애 부부의 배려였습니다.
가파른 달동네에 흰 눈이 소복이 내리는 새벽이었습니다. 언덕 꼭대기에 사는 손수레 아저씨가 연탄재를 가득 싣고 그 집 앞으로 지나갔습니다. 그리고는 문 앞에서 큰 길까지 연탄재를 뿌렸습니다. 앞을 못 보는 부부가 눈길에 미끄러지면 어쩌나 염려가 되어서였습니다.
이른 새벽, 문 밖에서 싸락싸락 들리던 발자국 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길이 왜 미끄럽지 않은지 부부는 알고 있었습니다. 시각 장인 부부에게도, 손수레 아저씨에게도 그해 겨울은 참 따뜻했습니다.
-‘TV동화 행복한 세상’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위 글에서 우리는 자신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지만 이웃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 본당에서는 지난 18일 두 분 형제님을 하늘나라로 보내드렸습니다. 19일(토) 저희 본당 대성전에서 금천 꼬미씨움 소속 쁘레시디움 4간부 직책교육이 있었습니다.
오후 4시에 강남성심병원에서 장례미사가 예정되어 있어 꼬미씨움 단장님의 배려로 4시에 끝나기로 되어 있는 교육을 3시 20분에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많은 간부들이 장례미사에 함께 할 수 있겠다 싶어 사전에 부탁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미사와 연도에 함께 하신 간부는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신부님께서는 교육까지 받고 빠듯한 시간을 내어 많은 단원들이 장례미사에 참가해준 레지오 간부들이 고마웠다고 치하를 해 주셔 오히려 민망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요즘 본당에서는 심심치 않게 장례미사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느낀 점은 마지막 가는 길에 배웅해주는 레지오 단원들이 항상 그 형제자매들이라는 것입니다. 코로나 팬데믹(pandemic) 상태에서는 그런대로 이해가 되었지만,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인데 말입니다.
우리 단원들 중에서도 가족을 잃고 본당 교우들로부터 기도로 위로를 받은 분들이 많이 계실 줄 압니다. 물론 일부는 코로나 팬데믹(pandemic)으로 인하여 그러하지 못한 분들도 있었습니다만.
레지오 교본 제2장 레지오의 목적에서 “레지오 마리애의 목적은 단원들이 성화(聖化)를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성화를 통한다는 것은 우리가 자기 희생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20일 주일미사 강론 중에 주임신부님께서 미사에 참례한 전 신자들에게 공통 질문을 하셨습니다.
미사 참례자 모두를 일어서게 한 다음, 1)세례를 받으면 구원들 받는다. 2)그렇지 않다. 중에 ‘그렇다’고 생각한 사람은 자리에 앉고 ‘그렇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리에 서있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1)번인 ‘그렇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은 사랑과 희생. 자비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