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요한 12,24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하신 권고이지만, 당신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하늘에서 이 땅에 내려오시어 목숨을 바치시고 생명의 열매를 맺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삶을 본받아 우리가 가진 것(靈과 育)을 기꺼이 봉헌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대중가요 중에 ‘가시나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 당신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람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이 노랫말처럼 ‘나 자신’을 온전히 비우지 않으면 어떤 열매도 맺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가시나무’가 될 뿐입니다.
우리는 사순시기를 맞아 매주 금요일 저녁에 성당에 모여 예수님께서 걸으신 십자가의 길을 함께 묵상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는 금요일 오후 3시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가 23:46).라는 말씀을 끝으로 숨을 거두시는 장면을 회상하며 마지막 공동 십자가의 길을 바치고 저녁 8시 수난예절을 끝으로 밤새워 성체조배를 통해 성체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 경배 드리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십자가의 길’ 시작 기도로 “주 예수님, 저희를 위하여 온갖 수난을 겪으신 주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성모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고자 하나이다. 저희에게 죄를 뉘우치고 주님의 수난을 함께 나눌 마음을 주시어 언제나 주님을 사랑하게 하시며 성직자들을 거룩하게 하시고 모든 죄인이 회개하도록 은혜를 내려주소서.”라고 청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지고가신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며 우리도 예수님께서 지고가신 십자가를 내 가족과 내 이웃을 위해 기꺼이 지겠노라고, 다시는 세속의 육신과 간교한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주십사 하고, 다시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하여 살겠으며, 열심한 신앙인으로써 성모님 품안에서 효성스런 자녀로 살다가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립니다.
예수님이 골고다 형장(刑場)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남겨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고 합니다.
①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가 23:34). -예수님께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을 하느님아버지께 사랑으로 용서를 청하시는 말씀입니다.
②“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가 23:4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함께 처형당한 죄수와 주고받은 대화로, 그리스도교의 종말론과 내세관을 나타내는 말로 풀이되는 말씀입니다.
③“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6~27).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와 제자 요한에게 한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실 것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④“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르 15:34) 임종 단계에서의 고독감, 절망감을 나타내는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죽음의 극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하느님의 구원에 희망을 걸었다는 뜻으로 풀이 됩니다.
⑤“목마르다”(요한 19:28). 예수님께서 뜻을 완성하려는 염원을 드러낸 말씀로 풀이 됩니다.
⑥“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 성부(하느님)가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려 하였던 일, 즉 신앙인들에게 영생의 길을 열어주는 일을 끝냈다는 말씀으로 풀이 됩니다.
⑦“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가 23:46). 이것은 본래 유대인들이 바치던 저녁 기도였다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 이 기도를 한 것은 곧 임종을 수락하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은 우리가 이 사순시기에 묵상하기에 적절한 말씀으로 생각됩니다. 나 자신의 편안함만 생각한다면 자신을 사랑의 제물로 봉헌 하기란 매우 어렵겠지요. ‘가시나무’ 노래가사처럼 내 맘 속에 가시가 너무 많아 내 이웃이 내 맘속에 깃들이지 못한다면 예수님 부활은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실천으로 우리 모두 알렐루야를 힘껏 찬송하는 부활을 맞읍시다. 아멘!
